픽팍의 드라마 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추천 처음 꽃향기를 만난 순간 후기]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그녀들의 사랑
호주에서 만난 재미있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연락을 하지는 않으나
그 여자 아이는 20대 중반이었고 누가 봐도 남자처럼 꾸미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누가 봐도 남자가 입을 만한 옷들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여자 친구도 있었다. 조금 친해지니 자신이 레즈비언이며 여자와 진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술을 마시면 여자들끼리 하는 섹스에 관해서도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 역시 운동을 전문적으로 한터라 관련해서 대학을 선택했다.
살면서 레즈비언을 볼 기회는 많지 않아서 강렬하게 남아 있는 아이인데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레즈비언 커플을 마주하는 게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놀란 기억이 있는데 생각해 보면 미국의 여자 축구 선수들 중에서도 레즈비언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서 남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여성들이 또 다른 여성을 사랑하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긴 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보니 여자 둘이 돌아다니면 저 사람들이 그저 친구인지 아니면 연인 사이인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감이라고나 할까. 절대로 평범한 친구 사이 같지는 않아 보이는 여여 커플이 가끔 보인다. 남남 커플은 잘 구분하기 어려운데 레즈비언 커플들은 대게 보면 어느 한 쪽이 지나치게 남자처럼 꾸미고 다니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일반화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긴 하지만 도시로 나갈수록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후 승무원이 되고 나서 여자들이 많은 세계 안에서 일하며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보긴 하였으나 호주에서 처음 만난 그 친구의 추억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만나게 된 나름 GL 드라마 처음 꽃향기를 만난 순간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매주 2회차씩 공개가 되는 드라마인데 최신 드라마는 아니고 2021년 이미 공개가 된 대만 드라마이며 2023년에 6부작을 영화로 만들어서 극장 개봉까지 한 드라마로 한국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높은 드라마를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들여 왔다.
이제는 BL 드라마 만이 아니라 GL 드라마들도 동성 결혼이 합법화가 된 대만과 태국에서는 만들어지고 있는데 확실히 법제화가 되면 이런 문화적인 트렌드 역시 반영이 되는 거 같기도 하다. 최근 일본 NHK에서도 여자들끼리의 음식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시즌 2 까지 방영을 한 적이 있다.
대만은 이제 뭐랄까.
청춘 장르의 대명사가 된 느낌이랄까.
원래 이런 장르는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대만도 청춘 장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일본이나 대만이나 여름이 정말 강렬한 나라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일본도 여름에 여행가는 걸 절대적으로 비추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대만 역시 그러하다. 대만은 특히나 여름도 길어서 4월부터 덥기 시작해 11월까지 한 여름의 날씨가 이어진다.
대만과 일본 여름의 공통점은 덥고 습하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도 여름이 습하고 덥기는 매한가지인데 일본과 대만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 덥고 습한 열기는 열정과 뜨거움으로 변환되어 청춘의 변화무쌍한 마음을 대변한다. 이 드라마는 본격적인 청춘을 다루지는 않으나 두 주인공 이밍과 팅팅이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과거 회상으로 자주 나오긴 해서 청춘 장르로 봐도 무방하다.
둘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 불같은 사랑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안타까운 점이라면 이밍은 이제 남편과 아이를 둔 주부라는 점이다. 팅팅은 이밍을 보고 한 눈에 반해 배구부에도 들어가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이밍에게 들이대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불륜을 대놓고 하고 있는 터라 마음 편하게 보기는 힘든 드라마다.
이건 마치 온라인 커뮤니티에 부인의 바람 피는 상대가 알고 보았더니 같은 학교 여자 후배인 걸 알게 되었다는 남편의 울분에 섞인 폭로글을 보는 느낌이랄까. 둘의 사랑이 달달하긴 하지만 온전하게 응원해 주긴 힘든 그런 죄책감이 함께 한다. 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사회 통념상 동성 연인을 사랑하고 그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는 게 현실적으로는 참 힘들다.
게이나 레즈비언들도 실제로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비난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평범이라는 가치의 압박이 생각보다 더 크다는 걸 한 번 고려해 봐야 한다. 드라마에는 남들이 하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건 그만큼 그런 사람들이 희소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직 2회차 밖에 공개되지 않았기에 이들의 결말이 어떨지 감이 안 오긴 하는데 왜인지 슬픈 결말일 거 같아서 벌써부터 마음이 안 좋다. 팅팅 역시 그걸 알고 이밍에게 직진을 하기로 마음 먹은 거 아니었을까. 대만은 이미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어 국민들의 인식이 꽤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까지 눈치를 보는 거면 아직 우리 나라는 참 갈길이 멀다 싶기는 하다.
대만 드라마 특유의 아늑한 느낌이 드는 드라마로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히 좋아서 관련 장르를 좋아한다면 한 번 정도는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래서 내가 대만 드라마를 못 끊는다.
여름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건 일본을 제외하면 대만이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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