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팍의 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추천 애플 사이다 비니거 후기]
이 재미있는 소재를 이렇게 재미없게 연출하는 것도 능력
신기할 정도로재미가 없다.
아니
이렇게까지 흥미로운 소재로 이 정도로 흥미 떨어지게 만드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소재만 보고 이거 적어도 중간은 가겠다 싶었는데 각본도 연출도 이 재미있는 소재를 제대로 살리지 못 한다. 보통 이런 사기꾼들의 실화 이야기는 재미가 없기가 힘들고 내가 당하는 게 아니라 남이 당하는 사기는 흥미가 돋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없다.
아니 이 정도로 재미없고 맹탕인 미국 드라마가 최근에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배우 케이틀린 디버 정도가 유일하다. 케이틀린이 보여주는 발군의 연기력이 그나마 볼 만한 요소인데 드라마 자체가 워낙에 재미가 없다 보니 주연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드라마 자체를 구원하는 건 버거워 보인다.
연출이나 각본에서 기본만 했어도 어느 정도의 재미는 먹고 들어가는 소재의 드라마임에도 이 정도로 망가진 건 아무래도 잘 하려고 하다가 망친 대학생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거친 게 아닌가 의심을 하게 만든다.
편집에서 다소 쿨하고 젊은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그게 효과적으로 작용하지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가 별로 안 쿨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쿨해 보이는 연출을 한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차하고 나서
실화를 한 번 찾아 보았다.
호주 출신의 젊은 여성은 자신이 4가지의 암을 겪고 있었지만 수술이 아닌 식이 요법으로 모든 걸 극복했다고 거짓 고백하며 세상의 관심을 받는다. 물론 암에 걸린 것도 거짓말이었고 오직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그런 거짓말을 시작했다가 사업까지 벌리면서 일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애플과 협업도 했다는 거 보면 생각보다 간도 통도 큰 사람이긴 하다.
물론
얼마 안 가서
진실이 밝혀지면서 가장 단기간에 몰락을 했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크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지만 암에 걸린 사람들이 대체 의학을 찾게 만든 문제에 있어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호주 버전 안아키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 건 아니다.
애초에 나는 항암 치료 자체가 효과가 있는지 정말 의문이긴 해서 안아키와 비교하는 건 벨 깁슨 입장에서도 억울할 거 같기는 하다.
그리고
사기라고 해 보았자 건강 관련한 사업이어서 주인공 벨 깁슨이 거짓말을 한 건 맞지만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기에 크게 화제가 된 사건도 아니었다. 심지어 벨 깁슨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드라마를 보면 나오지만 암에 걸려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혹하게 만들었기에 관련이 없다면 이름조차 들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드라마 애플 사이다 비니거를 보면서 실화를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건 장점 만큼이나 단점도 확실하다.
이미 거의 모든 대중들이 이야기의 진행 과정이나 결말을 아는 터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을 해야만 하는데 결말을 아는 이야기만큼 힘이 빠지는 각본도 없기에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그 동안 실화 바탕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이 흥행을 하기는 했어서 흥행 전망도 밝았지만 드라마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 하고 소리소문없이 묻히고 있다.
일단
벨 깁슨이라는 인물 자체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한 몫한다.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거나 수조원대의 경제적인 피해를 일으킨 사람도 아니고 사기 스케일을 보면 소소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뉴스로 많이 보도가 되지도 않았고 나도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는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마 배경이 호주라는 것도 사람들의 무관심이라는 요리에 한 스푼 양념을 더했을 터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건강 관련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이 과연 벨 깁슨 뿐일까.
벨 깁슨은 암에 걸렸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사업을 벌였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건강 관련 사업은 거의 대부분 사기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의사라는 전문직을 이용해서 인간에게 이득은 커녕 오히려 해로운 영양제 사업을 하는 의사의 탈을 쓴 돈에 미친 사업가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보면 벨 깁슨은 우스워 보일 정도다.
이렇게
건강이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기반한 마케팅과 사업을 상상 이상으로 번성하고 있다. 냉정히 말하면 벨 깁슨이 아주 특별하다거나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유별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흔하디 흔하고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그저 그런 평범한 사기꾼일 뿐이다.
이런 평범한 벨 깁슨의 사기 실화를 다룰 거라면 보다 더 영리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사람들이 이 평범한 소녀에게 어떻게 농락을 당했는지를 보여 주려면 최소한 초반부에서는 벨 깁슨에게 집중하는 이야기 구조를 택했어야 하는데 1화만 놓고 보면 벨 깁슨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이 쓸데없이 많은 비중으로 나와서 어디에 집중을 해야할 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애초에
벨 깁슨의 스토리 자체에 집중해서 하나의 영화로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벨 깁슨 자체를 너무 무매력에 정신 나간 관종으로 묘사한 것도 실패라고 보여진다. 라이언 머피가 제작한 범죄 드라마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특징이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무자비한 살인마인 범죄자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인간적으로나
특히 성적으로나...
그로 인해
라이언 머피는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하고 있으나 나는 오히려 그 덕분에 라이언 머피가 만든 범죄 실화 드라마가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자가 주인공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가 한 일을 차치하고라도 매력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특히 사람을 홀리는 사기꾼이라면 더욱 더 그래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벨 깁슨을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로 바라보고 있다. 이미 연출가나 각본가가 그렇게 보고 있는데 시청자들이 그녀의 사기 행각을 계속 지켜볼 이유가 없다. 분명히 그녀도 여러 사람들을 홀린 게 분명하고 그로 인해 수익을 거두었다면 분명히 매력이 있는 지점이 있을 텐데 이미 처음부터 벨 깁슨이 얼마나 악녀인지로 시작하면 도대체 누가 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겠나.
실화 소재 자체가 흥미로워 보여서 좀 기대를 했는데 의외로 재미없어서 놀랐다.
이런 식의 뒤통수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사실 별 거 없는 실화도 재미나게 만드는 게 드라마 크리에이터의 능력인데
그런 면에서 낙제점을 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건강 관련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을 더욱 더 조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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