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팍의 드라마 잡담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갑작스럽게 하차한 이병헌 감독의 내막을 상상해 보자
스타 작가와 스타 감독의 만남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제작 발표 당시만 해도 김우빈과 수지의 만남 이상으로 이 두 사람의 조합이 단연코 화제였다. 영화판에서 입지가 탄탄한 이병헌 감독과 레전드 드라마 작가라고 불릴만한 김은숙 작가의 만남은 다소 의외이긴 하였으나 독특한 조합으로 기사화가 많이 되었을 정도다.
사실 이병헌 감독은 영화 극한직업으로 극장 흥행 역사를 쓴 히트 감독이긴 하지만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만들 만큼 드라마 제작도 한 적이 있는 분이다. 기본적으로 본인이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신다. 우리 나라 영화 감독들은 거의 다 본인이 각본을 쓰고 연출도 하는 게 관례다. 일전에 봉준호 감독 역시 자신도 할리우드 감독처럼 각본을 안 쓰고 연출만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신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영화판은 각본가들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이고 감독이 본인의 이야기를 연출까지 하는 식으로 발전해 왔다. 이 흐름은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바뀔 거 같지는 않다.
그러나 드라마는 다르다.
드라마는 엄연히 작가 놀음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요즘은 유명 PD가 참여했다고 해서 드라마의 화제성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대신 유명 작가가 참여한 드라마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책이 안 팔리는 대한민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천재 이야기꾼들은 소설보다는 드라마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드라마가 일본의 만화처럼 전세계에서 먹히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한 때 익명을 기반으로 한 기사에도 나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방송가에서 드라마 작가의 파워가 워낙에 강력하다 보니 이로 인한 갑질도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라고 한다. 드라마 작가가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 제작진이나 방송가는 단칼에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고 이번 작품이 아니라 다음 작품도 함께 하려면 작가를 거의 신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게 방송가의 현실이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나마 드라마 작가 분들은 거의 다 여성이어서 성상납같은 문제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만약에 우리 나라 유명 드라마 작가들이 거의 다 남자였다면 분명 이런 문제도 있었을 테고 실제로 남성 PD들이 노골적으로 성상납을 요구하는 일들이 과거에는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일본에서 터진 후지 TV 성상납 사건만 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들 얼마나 부지런하게 악한 짓을 하고 있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우리 나라 드라마 작가들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에서 저녁을 먹는 장면을 보고 식탁 위에 올라가 있는 게장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바로 다음 날 PD가 유명 맛집에서 공수한 간장 게장을 선물로 드리는 정도가 갑질에 대한 기사의 전부였다.
그 당시에는 PD도 참 피곤하겠다 싶었는데 후지 TV 사건을 떠올려 보면 저 정도는 갑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이장우가 유명 주말 드라마 작가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여 남자 주인공을 교체한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논란이 되었는데 게장 정도는 에피소드로 볼 만하지만 드라마 작가가 이미 뽑힌 남자 배우를 갈아 엎을 정도의 힘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힘이 있는 드라마 작가라면
주연 배우 하나 날리는 건 일도 아닌 게 대한민국 드라마 산업의 현실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유명 드라마 작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와중에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갑자기 이병헌 감독이 중간에 하차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드라마를 아직 찍기 전도 아니고 드라마를 찍다가 하차한 터라 나머지 에피소드는 더 글로리를 연출한 PD가 이어간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일신상의 이유로 하차하는 걸 제외하면 딱히 이유가 명확히 밝혀진 건 하나도 없다.
분명 관계자들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김은숙 작가와 이병헌 감독의 관계가 생각보다 매끄럽지 않았다는 걸 상상해 볼 수 있다. 누군가 하차해야 한다면 당연히 감독이 나가야 하는 건 생각해 볼 여지도 없다. 어차피 자기 각본도 아닌 데다가 연출은 누가 해도 되지만 김은숙 작가를 대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김은숙 작가나 이병헌 감독이나 자기 스타일이 확실한 사람들이다.
둘 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해도 될 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생각이 확실한 사람들은 의견이 충돌할 여지가 크다. 연출만 한 감독도 아니고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쓰고 연출까지 하신 분들은 어쩔 수 없이 각본에 관여를 하고 작가에게도 의견을 제시할 할 여지가 더 크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김은숙 작가가 과연 타협을 허용하는 분일까.
나는 이건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 둘이 작업한다고 했을 때부터 과연 잘 맞을지 의심이 가기도 했다. 천재 두 명이 만나면 분명히 말이 나올 수 밖에 없고 드라마도 하나의 예술인데 저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맞으면 서로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딱히 큰 문제나 불화가 있어서 이병헌 감독이 하차했다기 보다는 일단 찍기는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안 맞는 게 너무 드러나서 결국에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이병헌 감독이 하차한 게 아닐까 짐작만 해 볼 뿐이다.
둘이 만나서 어떠한 시너지가 날 것인지 기대를 모았는데 결국 시너지는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을 그르치게 전에 헤어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래도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는 무척이나 보고 싶기는 하다.
이병헌 감독 역시 자신의 각본으로 본인이 연출한 드라마나 영화를 하는 게 본인 커리어나 궁극적인 결과를 생각해 본다면 더 좋은 길일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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