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팍의 드라마 이야기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추천 트리거 후기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
설레발을 좋아하지 않는다.드라마가 공개되기 전 시사회를 통해 먼저 보신 분들의 호평에 어느 정도 기대를 했는데 그런 기대가 무색할 만큼 드라마 트리거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일단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완성도가 높고 작품성이 좋은 데다가 주제 의식까지 좋더라도 좋은 드라마라고 하기 어렵다. 드라마는 순수 예술이 아니다. 누가 봐도 상업 예술의 대표 주자라고 할 만하다. 영화와 비교하더라도 드라마는 순수 예술에서 더 멀찍이 존재한다.
예술 영화는 존재해도 예술 드라마는 없다.
드라마 트리거는 탐사 보도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단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다.
탐사 보도?
대한민국에서?
라는 호기심이 동하게 만든다.
게다가 배우 김혜수와 정성일의 만남 역시 기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배우 모두 이렇다할 매력을 드러내지 못 한다. 김혜수는 그래도 코미디와 어느 정도 어울리긴 하는데 정성일 배우는 코미디와 너무 상극이고 본인의 외모에 비해 너무 나이가 어린 역할을 맡아서 생각보다 더 당황스럽다.
그렇게 동안인 배우도 아닌데 33살인 설정이라니 작가가 현실 감각이 없는 건가.
하지만
그런 소소한 문제는 사실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흔한 부조리.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종교 관련 범죄.
다루는 소재만 보면 크게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주제나 소재들을 어디서 많이 봤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 동안 드라마에서 전혀 안 다룬 소재도 아니고 이런 저런 장르물에서 지겹게 다룬 문제들이다. 그걸 가볍게 다루려고 한 거 같은데 이렇게 무거운 소재를 가볍게 다루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 모범택시나 열혈사제의 성공을 보고 고무받은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데 무거운 주제와 가벼운 연출은 노련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고 드라마 트리거는 연출이 훌륭하고 각본이 탄탄한 편도 아니라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이 나왔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기다리지 않았던 이야기.
종교 단체의 악행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어도 매주 방송하는 탐사 프로그램에서도 잊을 만하면 종교인들의 범죄가 정말이지 지겹도록 나온다. 사실 종교 관련해서 강력한 처벌이 어려운 게 피해자들이 자의적으로 그러한 고통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성인이 누가 옆에서 떠밀거나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종교 단체에 들어가서 가족과도 연을 끊고 생활한다면 그걸 법으로 막을 길은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막말로 누구 하나 심각하게 다치거나 사람이 죽어야 수사가 시작이 된다.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을 어떻게 각색해서 대중에게 보여주느냐는 다른 문제다.
드라마 트리거를 보면서 최근에 본 오스카 수상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떠올랐다.
천주교 사제 성추문 사건을 터뜨린 시카고 언론인들의 실제 이야기를 덤덤하게 다룬 작품인데 탐사 보도 이야기를 이 정도로 담백하게 담아내는 게 국내에서는 어렵다고 해도 디즈니 플러스라면 조금은 진지하게 접근했어도 되지 않았나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 드라마는 겉으로만 보면 무슨 소동 활극같은 느낌이다.
특히 공중에서 기구를 타고 종교 단체 관련 건물로 몰래 잠입하는 장면에서는 그 놀라울 정도의 비현실성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대놓고 코미디를 지향하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인데 그럴 거라면 제발 웃긴 장면이라도 나왔어야 하지 않나. 어디에서도 웃기가 어려울 만큼 대본도 그다지 좋지 않다. 분명 코미디를 노리고 만든 거 같은데 웃기는 장면이 하나도 안 나온다.
도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코미디와 정극 사이에서 갈피를 전혀 잡지 못 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와 애매한 연출 그리고 아쉬운 각본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 한다. 그러다 보니 덜 익은 요리를 먹은 것처럼 머릿 속이 어지럽다.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인상적인 배우가 단 한 명도 없다.
이건 배우보다는 연출이나 각본 탓을 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 김혜수의 연기 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밀수에서 김혜수는 역대 최악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김혜수가 연기 시작하자 마자 이 분이 연기를 그렇게까지 잘 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영화 밀수 후기를 보면 김혜수의 어색하고 과장된 연기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다.
드라마 트리거에서는 그래도 연기가 안정이 되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잘 한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게다가 정성일은 배역과 너무 안 어울리고 아무리 봐도 90년대 생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주종혁은 너무 가벼운 역할이어서 비중도 별로 없고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매 회차마다 굵직한 사건들을 보도하며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긴 한데 이들의 활약이 그렇게까지 기발하다거나 뒤통수를 치는 것도 아니어서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별로 개운하지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분명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데 속시원한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카타르시스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가 해결이 되는 방식이 너무 극적이고 과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저런 방식으로 일이 해결될 리가 없다는 걸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기에 이 드라마에 나오는 우당탕탕 기자들의 활약상이 전혀 공감이 가질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 부문에서 드론으로 마약을 적발하는 부분 역시 현실성이 전혀 없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무거운 소재를 가벼운 태도로 다루는 걸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굉장히 영리하게 접근해야 한다.
모범택시가 아무 생각없이 대중의 열광을 받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가볍게 접근하되 주제 의식 자체가 가벼워지는 건 안 된다.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방식인데 이걸 제대로 성공하는 드라마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애초에 기대를 전혀 안 하기는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별로여서 안 좋은 의미로 충격이었다.
연기나 연출 그리고 각본까지 어느 것 하나 건질 게 없다.
우리 나라도 이런 소재를 가지고 조금 진지하게 접근하는 드라마가 필요해 보인다.
언제까지 일본 드라마처럼 만화같은 영웅이 등장하는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전문 직업 이야기에만 함몰될 것인가. 우리도 현실에 존재할 만한 직업적인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의사라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나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신화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해댈 것인가.
디즈니 플러스라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서 탐사 보도 기자라는 직업을 보다 더 진지하게 다루지 않을까 했던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 버렸고 앞으로도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을 거 같다.
그리고 막말로 우리 나라에서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전혀 존경 받지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 이렇게 기자들이 목숨 걸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동화같아서 도저히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다.
제작진들은 지금 왜 나영석 사단의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 방영을 못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 건가.
드라마도 어느 정도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일단 직업적인 호감도가 있어야 어느 정도 몰입해서 보기 마련인데 우리 나라에서 목숨은 막론하고 자기 직업을 걸고 기자를 하는 기자가 과연 있기나 할까. 이런 시대에 탐사 전문 보도 기자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라니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다.
그런 기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모를 일이지만.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비현실적인 소재를 이렇게나 만화처럼 가볍게 다루면 안 된다는 걸 드라마 트리거가 다시 한 번 알려준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