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 정서
한이라는 말.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독 이 한의 정서에 강렬하게 공감하는데 그만큼 억울한 일이 역사적으로 많았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만 이럴까. 역사를 봐도 서민들의 삶은 늘 궁핍하고 불안하고 그와 동시에 처참했다. 모든 사람은 개인의 불행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과거 조선시대의 노비의 삶이 양반보다 불행하다고 할 수 있었을까. 양반의 고민과 노비의 고민은 절대적으로 달랐다.
입신양명을 고민하던 양반과 오늘 굶어 죽을지 내일 굶어 죽을지를 고민하던 노비의 위치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 이건 마치 현재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대통령 출마 정치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의 정치 수준이 우리 나라보다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탄핵 정국을 보면서 그것도 두 번이나 이런 일을 겪는 우리 나라를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탄핵을 하고 이걸 실행시키는 건 결국 국민이고 이 정도 국민성을 가진 나라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 만이 유일하다고 생각 한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켜 나라를 패망하게 만든 자민당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며 집권을 하고 있다. 거의 절대적인 권력이기에 비리가 드러나도 아무도 심판하려고 하질 않는다.
국민들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겉으로는 순응적으로 보이는데 이런 모습이 정치에도 반영이 된다. 그렇다면 미국은 다를까. 그나마 미국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릴 만하지만 최근에 트럼프가 당선되는 걸 보면서 민주주의도 결국 소련의 사회주의처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트럼프에게 한 번 정권을 빼앗기고도 월스트리트의 부자들을 위해서 일을 하던 민주당이 떠오른다.
경제 위기와 코로나로 인해 돈을 무한대로 풀었지만 결국 부자들의 재산만이 늘어나 버렸다. 서민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지옥과도 같은 일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월급은 늘어나지 않는데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버렸는데 이 와중에 대선에서 이긴다고 대선 막판에 무제한 자금 공급을 해 버렸다. 이 정도면 차라리 스스로 몰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든 물가를 안정시키고 서민들의 정책을 해도 모자랄 판에 민주당은 스스로 자살골을 넣었다. 어차피 미국은 로비로 돌아가는 정치판이기에 이미 국민이 무언가를 하기에는 불가능한 시스템이 되었다. 한 마디로 돈의 힘으로 돌아가는 민주주의이며 이는 민주주의라고 보기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다르다.
우리 나라는 위기 상황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박근혜 탄핵 정국 때만 그런 게 아니라 역사를 봐도 그러하다. 지도자들이 제대로 무언가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도자에 대한 큰 미련이 없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그래도 최악의 수는 두면 안 되었다는 한이 남기는 한다.
그렇다.
한의 정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풀데가 없고 모든 책임은 나의 몫이다. 버스 기사가 버스 점검을 받고 싶다고 하였으나 이 모든 게 개인 경비로 들어가는 현실이 어이없을 따름이다. 결국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승객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그러한 조치를 취하는 건데 경비 절감의 이유로 버스 회사는 이 모든 책임을 버스 기사에게 전가한다.
정치인들이나 사회 기득권층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신흥 귀족이라고 불리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 한다. 고로 그들은 지하철 점검으로 안전문에 끼여 죽은 20대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그의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로 인해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은 구천을 떠돈다. 아무도 본인들의 억울함을 헤아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민들은 무작정 선한가?
그것도 아니다.
아들이 농아인과 사랑을 하자 겁에 질린 엄마는 농아인에게 자살하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자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엄마를 나무라지 못 한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가 같은 입장이라면 비슷한 행동을 취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이런 정서 자체가 타인과의 공감 그리고 이해를 저해한다. 너의 죽음은 나의 불편을 능가하지 못 한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들이 공장이나 산업 현장에서 죽어 나가도 크게 공감하질 못 한다.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예에도 계급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디딘 바닥도 그리 단단하지 않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살아간다. 나는 세월호에 타지 않았으니 안전하다고 무시한다. 나는 할로윈 데이때 이태원을 가는 사람이 아니니 앞으로 그런 일을 당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성이 아니니 강간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할 일이 전혀 없다고 착각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가볍고 허망한 존재인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멍청한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대통령을 통해 보고 있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나는 대통령이 저런 식으로 버틸수록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라는 세력도 멸망할 거라고 확신한다. 저 정도로 국민을 질리게 만든 지도자가 과연 있었나 싶다.
우리 나라는 특유의 억울함 죽음이 참 많았다.
518 광주에서도
성수대교에서도
삼풍백화점에서도
세월호에서도
이태원 참사에서도
용산 참사에서도
많은 소시민들이 죽어 나갔고 더 놀라운 건 다음 날 거짓말처럼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 나갔다. 모두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그들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고 나에게 말을 걸어도 모르는 척하고 살면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죽은 자의 억울함은 죽은자가 풀지 못한다. 친일파에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너무나 많다. 우리가 친일파의 자손들이나 독재 권력에 대해서 안일한 태도를 취하면 그들의 영혼을 영원토록 우리 나라 안에서 울부짖을테다.
죽은 자들에게 조명을 밝게 밝힐 수 있는 건 결국 산 사람들이다.
우리가 바꿔 나가야 한다. 그게 지겹고 힘든 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로 인해 그들이 무덤에서 웃을 수 있다면 그래서 흙으로 돌아가 우리의 삶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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