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나 세상에
우리 나라 사극에서 왕을 제외하고는 성소수자를 제대로 다룬 드라마가 있었나.아니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아무래도 사극 자체가 특정 장르이기 때문에 여기서 더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성소수자를 기민하게 활용한 게 조금 신기하게 다가오긴 했다.
물론 노비와 성소수자는 다른 개념이다.
차별을 받고 인권이 낮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소수자라고 보긴 어렵다. 당연히 양반보다 노비의 수가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조선시대에는 평민이 가장 많긴 하겠지만 그에 비해 노비는 수가 만지는 않아도 양반보다 많다고는 보기 어렵다.
소수자이긴 하지만 성소수자만큼 드물진 않다는 거다.
하지만 차별의 정서는 비슷하다.
목숨을 담보하지 못 하는 점 역시 궤를 같이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동성애를 저질렀다고 처벌을 받는 건 절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보자면 자살 선고나 다름 없다. 유명한 분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열심히 숨기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사회적인 자살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왜 아직도 연예인 중에서 홍석천 만이 커밍아웃을 했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기 있는 남자 배우가 게이로 밝혀지거나 아니면 여자 배우가 레즈비언으로 밝혀지면 해당 연예인이 광고나 드라마에 나오면서 계속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작품 안에서 성소수자를 맡기만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게 우리 나라의 현실 아니던가.
나름 개방적이라고 하는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은 그나마 성소수자 배우들이 여러 방면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으나 제한적인 건 사실이다. 과거 톰 홀랜드가 선발된 스파이더맨 캐스팅 기준 중 하나가 무조건 이성애자일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개방적인 나라여도 성소수자는 나름의 애환이 있다.
하물며 조선시대는 오죽했을까.
주인이 죽으라면 죽은 시늉이 아니라 정말 죽어야 했던 노비와 성소수자의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 이러한 소재를 통해서 옥태영이 인권에 대한 의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도록 박지숙 작가가 하나의 장치로 성소수자를 활용한 듯한데 인기 드라마에서 갑자기 성소수자 이야기가 튀어 나와서 반가우면서도 당혹스럽긴 했다.
당장 우리 부모님만 봐도 거부감을 느낄 정도이니 어른들이 성소수자들에게 느끼는 거부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아직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금 실감한다.
누구도 처음부터 노비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 누구도 처음부터 성소수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둘 다 자신의 신분을 바꾸지 못 한다. 옥태영은 극적인 사건으로 구덕이라는 본체를 가지고 있으나 아마 평범하게 태어났다면 노비의 신분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 테다. 성 정체성 역시 학습이나 후천적으로 학습되기 보다는 천성이라고 보는 측면이 이제는 우세하다.
과거만 해도 아니 특정 종교만 해도 아직도 신의 도움으로 성정체성을 바뀔 수 있을 거라는 헛된 망상을 퍼뜨리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줘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이성애자들이 후천적인 교육으로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다름 없는데 이런 당연한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놀라지 마시라.
지금은 뉴스도 잘 안 들려오는 아프가니스탄도 남자 소년을 성노리개로 데리고 다니는 문화가 일반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이걸 한 번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다가 신고를 당해서 글이 내려간 적이 있는데 나도 글을 쓰면서는 긴가민가 했는데 관련 르포 기사가 사실이라는 걸 적극적인 신고를 통해 확인 사살했을 정도다.
실제로 취재를 통해 기자가 밝혀낸 건데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아무래도 임신 위험이 없는 아름다운 소년들이 돈 좀 있는 중년 남성들의 성노리개로 이용이 되는 건데 이러한 사실이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당연히 이 소년들은 나이가 먹고 늙어 가면서 다른 더 어린 소년으로 대체가 되고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매춘 시장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다.
노비나 성소수자나 그 끝은 참 비참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누구나 노비 그리고 성소수자처럼 약자가 될 운명에 처하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이야 그렇지 않다고 주장을 한다고 치지만 인생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잘 나가던 대기업 취업 예정자가 하루 아침의 실수로 반신불수가 되는 경우도 우리는 보지 않았나.
모두가 나 역시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사회 만이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만 해도 의대생이 술 먹다 죽으면 독립 열사가 죽은 것보다 더 큰 위로를 보내면서 이름 없는 노동자 청년이 지하철 역에서 점검하다 지하철에 끼어 죽으면 길고양이가 죽어 나간 것보다 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 한다.
나는 그래서 때로는 동물의 죽음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사히적인 약자의 죽음에는 미약하게 반응하는 게 굉장히 위선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동물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 아닌가.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예측이 안 가는 전개여서 더 재미있고 흥미롭다.
박지숙 작가는 아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옥씨부인전을 통해 다 하고 계시는 듯한데 매끄럽지는 않아도 이야기 전달력 만큼은 보기 드물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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