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한 재난 소재 드라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재난물에 환장한다.단순히 좋아한다 즐긴다를 떠나 환장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평론가들이 최악이라고 평가한 영화 2012도 나는 재미나게 감상했다. 영화가 조금 늘어지고 뻔한 건 있었지만 그래도 볼만은 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이후로 커리어가 완전히 망가지긴 하였으나 할리우드에서 이 정도로 뚝심있게 하나의 장르를 밀고 나가는 감독도 드물기에 아쉽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채널에서 2012나 비슷한 재난물이 나오면 채널을 쉽게 돌리지 못 한다.
재난 소재는 긴박함과 똥줄 타는 장면이 동시에 나오기 때문에 몰입하기가 그만큼 쉽다. 막말로 재난 소재로 재미없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는 말이다. 재난 소재인데 지루하고 재미없다? 이건 말이 안 되며 이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는 작품이 있다면 그저 운이 상당히 나빴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넷플릭스에서도 가끔 재난 소재의 작품을 공개하기는 하는데 사실 어느 정도는 다 기본 이상은 하기 마련이다. 사실 재난 소재로 아예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재난 소재를 즐기는 건 카타르시스나 아드레날린 덕분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 되며 나 역시 그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특히나 기후 위기와 재난으로 매년 새로운 재난이 일어나는 시대에 이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도 없다. 화산과 지진은 물론 가뭄과 대홍수가 일상이 된 시대가 아닌가. 이제 재난은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언제라도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 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재난물은 기본 이상만 만들어도 바로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든다.
라팔마 역시 그러하다.
노르웨이에서 만든 드라마로 의외로 시각 효과도 수준급인데 이제는 미국과 비교해도 이런 시각 효과는 크게 뒤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미국의 기술자들을 불러서 만들었지만 이제 제 3세계의 시각 효과 팀도 미국에 버금가는 시각 효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특히 화산 폭발과 쓰나미를 다루는 드라마라면 시각 효과가 어색하면 안 되는데 최근 들어 미국이나 다른 나라나 시각 효과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렇다면 재난에 대응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핵심이 될 터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역시나 그 중심에는 하나의 가족이 있다. 그리고 다른 주변 인물들도 나온다. 역시나 이 가족은 위기를 겪고 있고 풍비박산이 나기 일보 직전일 만큼 아슬아슬하다. 가족이라는 게 원래 그러하고 극적인 사건이 없다면 화해하기 힘든 게 다시 한 번 드러난다. 다시 말해 재난이 없었다면 과연 이 가족이 극적으로 화해할 수 있었을까.
나는 단언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위기 상황이 되어 봐야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지 알 수 있다. 쓰나미로 부모님을 잃은 자녀는 평생 부모를 그리워하지만 만약 부모가 살아 있었다면 평생을 부모를 원망하면서 보냈을 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재난은 그만큼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한 가지 인상적인 건 재난 센터에서 경보를 제 시간이 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어린 나였다면 왜 경보를 울리지 않는지 이해를 못 하면서 온갖 육두문자를 써가며 비난을 했을 테지만 나도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함부로 경보를 날리지 못하는 담당자와 정치인들이 다소 이해가 가기도 했다.
다들 알지만 지진은 발생과 동시에 경보가 온다.
그만큼 예측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징후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치명적인 재난이 일어난다는 보장을 아무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후지산이 분화한다고 해서 일본에 대지진이 난다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후지산은 몇 년 전에 가볍게(?) 분화를 하며 화산재와 가스를 뿜어낸 적이 있다. 그 당시에 후지산 관광을 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죽어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우려와 달리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대지진이 올 때가 되었다고 하지만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경보를 함부로 울리기 어렵다는 거다. 의심이 되는 징후가 나올 때마다 경보를 울리고 대피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내가 사는 마을 옆에 일본인들이 단체로 이주하려고 문의를 했던 적이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결렬되기는 하였으나 일본의 한 마을이 한국의 시골로 이주를 하려고 실제로 접촉을 해서 기사로도 크게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재난의 기억은 무섭고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인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또 한 번 일본에 대지진이 온다는 이야기가 많다.
5분 뒤에 올지 10년 뒤에 올지 아니면 30년 뒤에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로 인해 경보라는 걸 울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단순히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도 있으나 그렇게 울려 놓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 모두가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졸지에 양치기 소년이 되어 버리는 거다.
의도와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재난은 경고 없이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 온다.
어쩌면 재난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이고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치더라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기 마련이다. 애초에 죽음을 미리 받아 들이면 차라리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2003년 쓰나미를 겪고 나서 방황하는 남동생 역시 그러하다.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재를 망치는 그러한 삶이 과연 의미 있을까.
5분 뒤에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우리의 인생이다.
인생에는 인과 관계가 없다. 갑자기 지진으로 죽은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저 운이 나빴다고 보는 게 정신 건강에 편하다. 그럴 수록 오히려 현재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게 그나마 후회가 남지 않는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하면서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인생을 체념하며 살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내려 놓고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는 게 좋을 때도 있다.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는 삶은 불행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하기에 본인만 불행할 뿐이다. 특히 자신은 물론 남까지 통제하려고 드는 사람들의 인생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는 말로 설명 안해도 다들 알지 않나.
드라마 라팔마는 재난과 가족 드라마를 적절히 배분해서 만든 준수한 드라마다. 나처럼 재난 소재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4부작이어서 차라리 영화로 만들었어도 되었겠다 싶지만 의외로 등장 인물들이 많이 나와서 드라마로 만든 게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재난 드라마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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