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얽메이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런 사람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나 대학교 시절 조금 특이한 지인의 친구가 있어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외모는 좀 희미한 사람이었으나 친한 지인의 친한 친구여서 종종 보기는 했는데 강원도 지역의 교대를 다니면서 선생님을 꿈꾸고 있던 친구였다. 나의 지인은 혼자서 아무 예고없이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충동적으로 친구가 대학을 다니던 도시로 당일 치기 여행을 가서 하룻밤을 신세지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연락을 받고 티가 나게 당황한 태도를 보이더니 현재 본가로 내려온 터라 학교 근처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 이후 이야기를 듣고 타이밍이 안 좋았구나 정도로 넘기려고 했는데 몇년 뒤에 들어 보니 그 지인은 해당 교대를 다닌 것도 아니었고 최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든 지인과 친구들을 속이며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다른 친구가 다른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그 친구를 발견하고 이 일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어서 그 분이 왜 그런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그것도 친한 사람들에게까지 했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생각해 보면 대학이라는 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단순한 학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회의 거짓말
도회는 처음부터 거짓말로 일관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영을 만나고 변하고 싶었고 그렇게 경멸하던 아버지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다. 수능을 보자마자 아버지를 떠나 독립을 하며 살았으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자신을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기 어려웠다. 아버지처럼 실패자가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저주는 곧 아버지와 과거의 저주를 의미한다. 그 누구도 풀기 어렵고 본인 스스로도 벗어나기 어려웠던 굴레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일에 연연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나에게 의미가 크다면 죽기 직전까지 완전하게 잊어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사실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거나 극복 가능하다는 말도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다.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사람이 성인이 되거나 나이가 먹는다고 그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며 내가 나이가 먹어보니 이런 나의 생각은 더욱 더 확고해지고 있다. 나 역시 과거의 사실들이 나를 아직까지도 옥죄여 올때가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정말 많다.
도회는 거짓말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과거에서 벗어났으리라 착각했고 자신의 미래가 아버지와는 다를 거라 소망했다. 그러나 이 또한 여의치 않았고 주영을 만나자마자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빈 껍데기 같은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듬직한 주영
주영은 엄밀히 말해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사람이다. 저렇게 듬직하고 모든 걸 감싸안을 수 있는 건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지치기 마련이며 저 정도로 듬직한 소나무같은 사람은 소설에나 나올 법하다. 하지만 그런 주영이기에 도회의 모든 걸 보듬어 안을 수 있다. 원래 대로라면 도회는 저런 식으로 거짓된 삶을 살다가 파국을 맞이하겠지만 주영을 만나 예정보다 일찍 파국을 만난 도회는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오래 흘러 다시 시작을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 늦은 법은 없다.
뭐든지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수능을 망쳤다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지 못 했다고 내 자식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다. 인생은 오히려 정말 망했다 싶다고 스스로 인식했을 때 본격적으로 망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의외로 단순해서 내 인생 이외의 타인의 인생에 그리 관심이 없다.
아니 현실적으로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다.
나만 내 정신을 붙들고 있으면 견디지 못할 그리고 극복하지 못할 난제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영의 존재감은 다소 동화적인 설정이지만 그래도 주영같은 캐릭터를 드라마에서 보는 건 언제나 힘이 된다. 이야기가 다소 늦게 풀리면서 보는 내내 의아해 하면서 보긴 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에 도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면서 나는 비로소 도회가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현호
현호는 오히려 태권도의 저주를 풀어줘에서 가장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이다. 자신의 감정표현에 익숙하지 않고 항상 뒷북을 치며 모든 게 한 박자 느린 사람이다. 본인이 남자를 좋아하고 도회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유아적이라는 점이 너무나 익숙할 정도다. 도대체 왜 저럴까 싶지만 실제로 현호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한 사람이 의외로 귀하다.
그렇게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건강한 사회이지만 한국 사회는 의외로 사소한 부문에서도 가면 쓰기를 강요한다. 현호처럼 자라는 어른이 대한민국에 유독 많은 게 그리 놀랍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보면서 현호에 유독 마음이 더 쓰이기도 했다. 게다가 도회나 주영과 달리 얼굴 자체가 선이 굵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게이로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그가 겪은 갈등과 마음의 고통이 화면 밖으로까지 전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현호같은 사람이 솔직하게 살며 본인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게다가 광모
광모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태권도의 저주를 상징한다. 부모의 욕심과 욕망에 희생이 되어버리는 아이들. 이런 아이 의외로 굉장히 많다. 이제 한국의 부모님들은 아이 만이 아니라 아이를 감싸 안으려는 선생님들까지 악질적으로 괴롭히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나라에서 과연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우기 어려운 문화권에서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이제 대한민국 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그만큼 아이를 제대로 키워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원래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현대 사회는 한 마을은 커녕 한 가족도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기 힘든 시스템이 되었다. 모두가 파편화되어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과연 무얼 배울 수 있을까.
오히려 제대로 자라나는 게 불가능한 사회문화라고 보는 게 합당할 테다.
그래도 희망
난 그래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동시에 사각지대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희망적이다. 흔하게 벌어지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영리하게 풀어낸 드라마가 잘 없었다.
티빙에서 보긴 했는데 자막이 없어서 알아 듣기 조금 힘들긴 했으나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BL 드라마로도 괜찮은데 그냥 성장 드라마로 봐도 수준급이어서 황다슬 감독의 차기작 역시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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