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하게 시작하여 장엄하게 끝난다
4화에서 하차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드라마 무빙을 1화를 보고 나서 하차했었다.
공개되자마자 보게 되었는데 무언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극찬을 받으며 2023년을 뒤흔들 드라마로 꼽히는 게 조금 의아하긴 했었다. 그 이후 어떻게 4화까지는 보았는데 4화를 보고 나서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역시나 다시 한 번 하차했다.
그런데 드라마 조명가게를 보고 나서 무빙을 한 번 더 봐야겠다 싶었다.
강풀의 문법이 낯설지만 한 번 적응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틀 만에 20화까지 정주행해 버렸다.
생각해 보면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할 당시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집중해서 보기가 힘들었다. 그저 가장 먼저 보고 빨리 블로그에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 조금만 재미없어도 바로 하차하고는 했다. 그러한 안 좋은 버릇을 네이버를 떠나서야 고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너무 말도 안 되게 재미없으면 중간에 하차를 하긴 한다.
강풀의 사연
유튜브 요정재형 채널에 작가 강풀이 나왔다.
드라마 조명가게를 홍보하기 위해서이지만 어쩔 수 없이 드라마 무빙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가셨다. 드라마는 스포일러 때문에 말을 많이 아끼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무빙 시즌 2 가 진행이 되고 있는 마당에 조명가게의 성공은 강풀 작가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빙을 제외하고 강풀 유니버스를 다시 재건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강풀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강풀도 드라마는 처음이라 처음에는 성공한 드라마를 많이 보았고 극본집도 찾아 보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원래 드라마 무빙은 강풀이 드라마 각본 집필을 맡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초고를 보고 강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럴 거면 내가 한다고 해서 시작이 된 거였다. 애초에 영화화도 많이 되었으나 강풀이 집필한 작품은 무빙이 처음이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조인성이 겨우 7화에서 나오긴 하지만 이 고집스러운 면모도 강풀답다 싶었다. 강풀은 지금에서야 인정한다. 자신이 드라마 작법을 몰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도 그래서 아마 4화까지 보면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서 지루해하며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강풀도 드라마 극본은 처음이라 초반에는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5화부터 드라마는 폭발한다.
말 그대로 원자 폭탄이다.
이정하와 봉석이
이정하의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 보여준 연기가 어색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나도 짧은 클립으로 보긴 했으나 확실히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연기 톤이었다. 그런데 봉석이와 이정하는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인다. 아마 그래서 캐스팅이 된 듯한 느낌이다. 마치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이혜리 그 자체였듯이 말이다.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도 뛰어 넘기 힘든 본연의 모습을 이정하는 가지고 있었다. 흉내를 낸다고 해서 봉석이의 순수한 모습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이정하는 봉석이처럼 맑고 순수하고 해맑은 사람이었다. 아마 그러하기에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연기는 몰라도 드라마 무빙에서 이정하의 연기력을 까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정하와 봉석이를 구분하는 일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류승룡의 존재감
장주원을 맡아 열연을 펼친 류승룡은 알아주는 연기파 배우다.
미세한 표정 만으로도 연기를 하는 배우로 영화 단독 주연을 맡아도 될 배우가 드라마에서 크지 않은 비중으로 나온다. 처음 무빙 캐스팅이 발표날 당시 조인성과 한효주도 놀라웠으나 류승룡의 출연은 그야말로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역시 류승룡은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해맑은 아버지부터 자신의 배를 칼로 잔인하게 가르는 조직 폭력배 역할까지 위화감이 없다.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드라마 무빙 안에서 한 번에 보여준다. 보통 이 정도 연기 스펙트럼을 한 드라마 안에서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연기력이 애매한 배우가 했다면 자칫 현실감이 없거나 개연성이 휘발되어 날아가 버릴텐데 류승룡은 이 어려운 미션을 완성해낸다.
오직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식하지만 의리 있고 딸 밖에 모르는 장주원에 류승룡 만한 배우는 없었다.
멋있는 조인성
신기하게도 분량이 많지는 않다.
조인성은 최근 드라마보다는 영화에서 보다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미 일정이 영화로만 채워지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배우 송강호나 최민식도 드라마를 하는 마당에 독특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영화 클래식에서 조인성의 발연기를 큰 스크린으로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지금의 조인성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연기를 아주 못 하지는 않았으나 연기를 잘 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하이틴 스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스타이긴 하지만 연기를 잘 하지는 않는다는 수식어가 늘 그를 따라 다녔다.
특히 영화 클래식에서의 굴욕은 본인에게도 상처였을 텐데 이를 극복하고 지금과 같은 배우가 되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특히 영화 밀수에서 조연으로 나오지만 조인성은 그야말로 대단한 존재감을 보여 주었다.
류승완 감독이 차기작에 조인성을 캐스팅한 게 이해가 갈 정도다.
원래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생긴 배우 이지만 여기에 연기력과 멋있음까지 더해지니 상상을 초월하는 아우라가 나온다. 배우 혼자서 이 정도 아우라를 스크린에 뽐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조인성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 다니니 더할 나위 없이 극락이다.
결국 사람이 먼저다
역시나 휴머니즘이었다.
강풀은 히어로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사람에 집중했다. 그들이 가진 능력은 부수적인 요인이었다. 장주원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상처를 입는다. 이재만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만 폭력을 휘두른다. 김두식은 한 발의 총알도 모두를 즉사 시킬 수 있지만 바로 죽지 않을 만큼만 총알을 사용한다.
히어로의 특성 상 사람을 죽일 수 밖에 없지만 누구 한 명 생명을 소홀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부분에서 드라마 무빙은 마블 히어로 영화와 엑스맨과도 결을 달리한다.
한국형 히어로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건 강풀의 히어로 드라마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강풀이 있다. 난 강풀의 웹툰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놔서 그의 세계관을 잘 모르지만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이하고 독특하며 무엇보다 새롭다.
강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이야기이기에 어떠한 소재를 다룬다고 해도 집중하게 된다. 드라마를 처음 써보시는 분이 초반에 잠깐 헤매다가 이 정도의 집중력으로 20화를 완성해 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본인은 우스갯소리로 그림 실력이 너무 애매해서 이야기에 집중했다고 하시는데 결국 웹툰이나 드라마나 영화나 결국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며 핵심은 서사라는 걸 생각해 보면 강풀의 드라마 무빙이 이 정도로 파급 효과를 일으킨 게 이해가 가고도 남는 일이다.
특히 한국사를 가볍게 훑으면서 이야기를 진행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최근 들어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드라마가 있었나 싶은데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시즌 2 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할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강풀이라면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특히 잠깐 지나간 사이에 나온 투시 능력이나 시간을 멈추는 능력자들도 나오게 될 듯한데 이렇게까지 복선을 깔아 놓은 걸 보면 시즌 2에 대한 구상도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대략적으로 마친 듯한 느낌이다.
앞으로 10년은 더 드라마 극본을 집필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10년이 아니라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많은 드라마나 혹은 영화도 집필 하셨으면 한다.
최근 몇 년 안에 본 가장 완벽한 드라마였다.
늦게서라도 다 보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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