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스파이도 사람이다
애플 오리지널 드라마 슬로 호시스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블랙 도브.같은 첩보물 드라마이긴 하지만 요원보다는 스파이 자체에 방점을 두고 있다. 보통 스파이하면 소련이나 미국 스파이같은 걸 떠올리기 마련인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나라에도 스파이는 존재한다. 우리 나라 정부 역시 북한이나 다른 나라에 스파이를 파견하며 최근 북한 내부 스파이 시스템이 정보 누출로 다 무너진 기사가 나온 만큼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다면 북한은? 당연히 지금도 우리 나라에 스파이를 파견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우리 나라에 스파이를 파견하지 않을까. 그럴리가 없다. 아무리 작은 나라이지만 강대국은 거의 모든 국가의 정치 부문에 관여하기 원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스파이가 활동하고 있다.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산업 스파이까지 합하면 그 수는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다. 애초에 비밀 리에 활동하기 때문에 현재 그 수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현재 벤 매킨타이어가 집필한 스파이와 배신자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이 드라마가 더 흥미롭게 다가 왔다. 소련과 영국 이중 스파이였던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의 실화를 다룬 전기 성격의 책으로 두껍긴 한데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고 있다.
드라마 블랙 도브를 보면 소위 말해 미인계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함락시키는 전략이 나오는데 이건 스파이의 기본 덕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007 제임스 본드가 아무 이유 없이 잘 생기고 성적으로 매력이 넘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본인의 피지컬이나 외모도 임무를 위해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지 역시 처음에 블랙 도브로 추천이 된 건 그녀의 배경도 있지만 아름다운 외모고 한몫 단단히 했다.
원나잇 이지만 헬렌의 남편 앤드류는 본인에게 접근한 헬렌에게 반하고 만다. 보통의 관계였다면 하룻밤 추억으로 마무리가 될 일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헬렌은 앤드류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며 앤드류는 정말 어쩌다 보니 국방 장관까지 되었고 차기 총리로 거론까지 되는 인물이다. 헬렌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이로 인해 헬렌의 보수는 올라가고 그녀의 위치는 더욱 더 공고해진다.
문제는 제이슨이라는 인물이 헬렌에게 접근하면서부터 시작이 된다.
제이슨과 천년의 사랑을 한다고 생각한 헬렌은 제이슨이 갑자기 죽어 나가자 그를 위해 복수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녀가 가진 모든 걸 걸고 말이다. 때마침 형제보다 진한 우정을 나눈 샘이 런던으로 돌아 오고 이 둘은 의기투합하여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을 척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역시나 이 세력은 상상보다 더 큰 위험이었고 무지막지하고 무식한 조직이었다.
제이슨을 죽이고 중국 대사관을 갑자기 사망하게 만든 건 미국이나 영국도 아니고 그저 범죄 조직 클라크 패밀리의 가족 트렌트 클라크였다는 점이 좀 황당하긴 한데 이런 범죄 조직이 실제로 국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다고 보긴 어려워서 설득력이 없지는 않았다. 어차피 모든 게 다 돈을 중심으로 돌아 간다면 정재계에 영향을 미치는 어두운 큰 손이 하나 있다는 설정 역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할 어미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 않나. 일찍이 우리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통해서 살인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불사하는 어미를 보지 않았던가. 어머니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불사른다.
결국은 그래서 모두 인간이다.
냉철한 스파이 활동을 하던 헬렌도 MI5 요원이었던 제이슨과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신분을 속여 마이클을 만나던 샘도 결국 마이클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알렉스 역시 아들을 내치는 게 본인을 위해서도 좋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 결국 여기에서 가장 냉철한 건 모든 걸 관장하는 리드 뿐이다. 어쩌면 리드는 이 모든 걸 앞서 내다 봤을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헬렌과 샘 그리고 리드의 삼각 트라이앵글 관계도 완벽하다.
묘하게 균형이 맞고 조화롭다.
결국 중국 대사관의 딸을 좋아하던 트렌트의 멍청한 실수로 인해 이 모든 사단이 벌어진 거긴 하지만 원래 전쟁이라는 게 사소한 걸 계기로 시작한다는 걸 떠올려 보면 각본 역시 묘하게 설득력이 있기는 하다. 뭐 과장일 수도 있으나 아편 전쟁이 떠오르기도 했고 마약 문제는 전세계 어느 나라나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에 그러하다.
스파이도 결국 감정이 있고 드라마에 묘사되는 것처럼 항상 냉철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로봇이 아닌 이상 감정이나 경험에 휘둘릴 수 밖에 없고 당연히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기지라고 할 만하다. 헬렌이 완벽한 스파이라고 보기에는 역부족이지만 헬렌은 결국 무슨 상황이 일어나도 살아 남았다.
냉혈해서 살아 남는 게 아니라 살아 남기에 전설적인 스파이가 되는 거다.
그리고 스파이는 제임스 본드같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스파이도 단계가 있고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느냐에 따라 당연히 보수나 대우도 다르다. 유명 정치인도 스파이가 되기도 하며 실제로 영국 역사를 보면 총리 후보자가 소련의 스파이로 활동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소련의 시대가 저물었기에 지금은 저서나 인터넷 뉴스에서 과거 스파이로 활동하던 사람들의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마 우리 나라 정치인들 중에서도 타국을 위해 스파이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테다. 워낙 비밀스럽게 이 모든 일이 진행되기에 들통나기 전까지는 파악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블랙 도브가 특이한 점은 스파이 활동을 정부나 단체를 위해서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철저히 최고 입찰자에게 정보를 팔아 넘기는 스파이라니.
자본주의의 끝판왕을 스파이 세계에서도 보게 된다. 이념이나 신념이 아니라 오직 돈을 위해 움직이는 스파이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제대로 했다고 보여지며 드라마도 재미있게 잘 만들어서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진다. 슬로 호시스처럼 길게 이어질 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음 이야기도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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