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가능했던 결론
초반부터 캐서린이 너무할 정도의 악녀로 그려지길래 알폰소 쿠아론이 이런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듯해서 후반부에 어느 정도 반전이나 아니면 적어도 캐서린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이러한 나의 예상이 전혀 틀리지는 않았어서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조나단의 광기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고 캐서린의 입장이 단번에 이해가 가면서 마지막 화에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게 과연 알폰소 쿠아론 감독 답다.그 동안 드라마 안의 캐서린을 제외한 사람들이나 그리고 시청자들은 조나단의 친어머니인 낸시의 입장에서 그려낸 이야기를 믿고 있었다. 그 이야기가 상당히 그럴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극적이었다. 유부녀가 남편이 없는 휴양지에서 이제 갓 성인이 된 소년을 유혹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그 어린 소년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보다 더 자극적인 설정이 있을까.
낸시는 이를 노리고 소설을 집필했고 고이고이 숨겨 두었다가 사후에 남편인 스티븐에 의해 발견된다. 애초에 우리는 먼저 질문을 했어야 했다. 아들 조나단의 죽음에 대해서 그토록 슬퍼하며 캐서린을 집요하게 쫓아다닌 낸시는 왜 이 소설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을까.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내시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낳은 아들 조나단이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사실을 안다는 것과 아들에 대한 사랑은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다. 자신의 자식이라면 악마여도 품게 되는 게 어미의 마음인 것이다. 낸시 역시 그러했고 그러한 부조리함에서 고통 받다가 결국 병까지 얻어 생각보다 일찍 삶을 마감해 버렸다.
어찌 보면 낸시를 죽인 건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한 본인의 탓이 가장 크다. 애초에 이탈리아 여행에서 같이 여행을 간 사샤가 먼저 돌아온 지점부터 의문을 품었어야 했다. 사샤의 부모님이 크게 화를 내며 낸시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점과 사샤과 가족의 죽음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게 아니라는 점이 나는 항상 마음에 걸렸다.
조나단은 분명 사샤에게 몹쓸 짓을 했을테고 사샤도 참다 참다가 못 참고 조기에 귀국을 했을 테다. 특히 조나단의 죽음을 듣고도 싸한 반응을 보인 사샤의 어머니 역시 주목해 볼만한 지점이다. 그저 실수에 불과했다면 사샤의 어머니도 조나단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슬퍼했을 테지만 사샤의 어머니는 분명 조나단의 죽음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으며 상상을 해보좌면 조나단이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부모라면 자신의 자식은 망나니가 아닐 거라고 기도한다.
아니 소원한다. 신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러한 소원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식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항상 나의 상상을 넘어 사고를 치며 악마로 변하기 마련이다. 모든 자식이 다 그러한 건 아니지만 몇몇 자식들은 내가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모습으로 자라나기도 한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조나단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런 낌새가 보였고 낸시와 스티븐은 부모된 입장에서 애써 그러한 진실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캐서린은 다를까. 캐서린도 비슷하다. 캐서린이 낸시와 다른 점이라면 아들 니콜라스는 조나단처럼 악마는 아니었으나 무기력한 아이라는 사실이다. 친구도 애인도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변변찮게 살아가는 니콜라스가 캐서린은 내심 실망스러웠을 테다.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캐서린은 절망한다. 특히 조나단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니콜라스가 봤다는 걸 캐서린이 만약 알았다면 무너지고 말았을 테다. 다행시 니콜라스는 그 당시의 기억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으나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너무나 충격적인 기억이라 억누르고 있는 건지 알길은 없다.
결국 피해자는 캐서린이다.
최대 가해자라고 묘사되었으나 처음부터 캐서린은 피해자였다. 생각해 보면 돈도 없고 볼푼없는 어린 조나단을 보고 캐서린이 마음이 동했을 리는 만무하다.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해서 항상 남자를 유혹하는 건 아니다. 특히나 캐서린은 남편이 없어도 행복하게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캐서린을 보고 한 눈에 반한 조나단은 캐서린의 호텔 방을 침입하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캐서린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아들을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조나단을 구해 달라고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게 성인 군자처럼 느껴질 정도다. 무려 3시간 반 동안 캐서린을 무차별적으로 강간한 조나단은 결국 목숨을 잃으며 내가 보기에도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아 보이긴 한다.
자신의 아들에 대한 진실을 애써 감추며 캐서린에게 복수를 감행한 스티븐은 뒤늦게 깨닫는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나이가 먹어도 지혜는 쌓이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오히려 낸시 쪽이 더 이 사태를 지혜롭게 극복한 게 아니었을까. 낸시는 아들에 대한 진실을 어느 정도 알았기에 본인 입장에서 판타지에 가까운 소설을 써내려갔다. 그게 진실과 아주 거리를 둔 거짓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누군가를 악마로 만드는 건 참 쉬운 일이다.
자신의 입장을 남편에게조차 항변하기 어려웠던 캐서린은 남편 로버트와 자신을 강간한 조나단이 근본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걸 알고 좌절한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로버트가 들어 주었다면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겠지만 저 상태에서 로버트가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이미 캐서린을 처음부터 내친 입장에서 캐서린과 로버트는 신뢰의 치명타를 입었다.
그나마 스티븐이 유일하게 캐서린에게 해준 선물이 있다면 남편 로버트와의 관계가 얼마나 허울 뿐이었는지이며 그래도 결국 니콜라스와 관계를 회복하게 해주었다는 점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비난하려면 결국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진실을 마주하고 나서부터다.
그게 아니라면 비난마저 오락이 되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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