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이 제일 맛있다
아는 맛을 끊기란 어렵다.아무리 살이 찌는 걸 알아도 떡볶이를 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동일하다. 아마 마약도 같은 의미로 중독자들을 양산해 내는 거 아닐까. 담배나 술 역시 그러하다. 담배나 술 하나 못 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특정한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 있다. 자극이 강력할수록 손을 털기가 더 어렵다.
맥스턴 홀은 한국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성이나 전개가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도 않고 나와도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 이런 트렌드가 사라진 거라고 보기 보다는 잘 못 만들어서 그렇다. 맥스턴 홀을 보면서 그런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야기가 아무리 개차반으로 흘러가도 짐짓 점잖은 체하면서 완성도만 높게 만들면 누구나 보고 싶어 한다.
맥스턴 홀 역시 전개가 한국의 수준 낮은 일일 드라마와 진배없으나 배우들의 외모가 일단 훌륭하고 연출이 생각보다 괜찮아서인지 흐린 눈을 하고 보게 된다. 그렇다. 누가 이런 드라마에 이야기를 기대하나. 게다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맛이기에 집중해서 보게 하는 힘이 크다.
주연 배우들의 외모가 화려한 것도 집중을 하게 만드는 요소다. 어차피 개연성이 없다 보니 외모로 시청자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특히 아마존에서 선보이는 만큼 독일 사람들만이 아니라 전세계인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외모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들의 국적을 특정하기가 조금 까다롭다.
독일 드라마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유럽 어디 나라인지 파악하기가 힘들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미남 미녀들이다.
초반 맥스턴이 루비에게 쌍둥이 여동생이 교사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려고 돈을 주는 장면부터가 터지긴 했다. 하지만 이게 비현실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한국의 부자들도 일이 터지면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과거 자신보다 경제적인 지위가 낮은 사람을 야구 방망이로 후드려 패놓고는 돈을 뿌린 재벌 2세가 있지 않았나.
부자들의 수준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고 현실은 오히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마라맛이다.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보게 만드는 힘 그게 바로 드라마의 매력이다. 참신하고 새로운 이야기라고 해서 대중들이 무조건 열광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창작자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들도 끊임없이 새로운 걸 만들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성공한 제작자는 끊임없는 자기 복제 아래에서도 일정 수준의 재미와 수준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제작자가 넷플릭스에서 에밀리 파리에 가다로 승승장구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애초에 남들이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세계 어디라도 신데렐라 스토리는 먹히기 마련이다. 특히 현실이 시궁창일수록 사람들은 꿈을 꾼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그러하다.
맥스턴 홀은 이런 숨겨진 욕망 그리고 로또에 당첨되는 게 더 확률적으로 높은 부자와 빈자의 로맨스를 여실히 보여주며 이게 꽤나 설득력이 있다고 믿게 만든다. 현실에서 벌어지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가끔 로또와 비슷한 확률로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잘못된 믿음은 한 번 더 강화된다.
나 역시 비슷하다.
이런 드라마를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으나 그저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이야기 이지만 꿈꾸는 거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거라도 없으면 인생 자체가 너무 힘들지 않겠나. 현실이 바뀔 확률이 제로에 수렴한다면 상상 속에서라도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고 싶다.
이런 이야기가 수준이 낮다고 하기 전에 왜 사람들이 이런 비슷한 이야기에 열광하는지를 분석하는 게 더 현명하다. 로맨스 장르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구성 안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 동화들이 여전히 재조명되고 널리 읽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사람의 본성은 수백 수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성도가 높고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드라마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드라마이고 눈이 즐거운 드라마라는 걸 확실히 이야기해줄 수 있다.
총평
눈이 즐겁고 뇌가 가벼운 드라마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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