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짓고는 못 산다
알폰소 쿠아론의 연출작이어서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지 평가가 좀 박하긴 하지만 드라마 디스클레이머는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원작 소설이 워낙에 탄탄한 것도 있으나 연출이 알폰소 쿠아론이라는 점이 가장 인상적일 정도로 모든 장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특히 3화에서 보여준 젊은 캐서린이 십대 소년 티를 갓 벗은 조나단을 유혹하며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노출 수위가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카일리 미노그를 중심으로 나누는 대화 장면으로도 보는 시청자들을 젖게 만들었다.생각해 보면 알폰소 쿠아론은 영화 이투마마를 연출한 전적이 있는 감독이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흥분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 장르를 그 동안 거의 안 해왔을 뿐이지 원래도 잘 하는 감독이다. 그런 장기가 이번 3화에서 여실히 드런나다. 특히 레일라 조지가 보여주는 팜므 파탈 연기가 신비로울 정도다. 어디서 저런 배우를 데리고 왔나 싶은데 그동안은 소모적인 영화에 많이 나오셨는데 아마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캐스팅 디렉터 눈에 단연코 들어왔을 거라고 확신한다.
루이스 패트리지 역시 이 정도로 연기가 좋은지 몰랐다. 성에 갓 눈을 뜬 소년을 제대로 연기해 낸다. 레일라 조지 만큼이나 시청자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조나단인데 그동안 어설픈 섹스만을 해왔던 소년이 제대로 성에 눈을 뜨면서 보여주는 광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루이스 패트리지 역시 에놀라 홈즈만 보고서는 크게 기대가 안 되었는데 조나단 역할을 계기로 연기력도 높아진 터라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된다.
확실히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연출력도 좋으나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어 내는 데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번 드라마 디스클레이머로 레일라 조지와 루이스 패트리지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에 반해 정호연은 거의 엑스트라급 역할이어서 그런지 자세히 안 보면 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비중이 낮아서 아쉽다. 제대로 정면 샷을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긴 해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한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가 힘들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자식을 먼저 보낼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기 때문에 마음을 추스리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조나단의 어머니인 낸시 역시 그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조나단의 부재가 주는 충격이 상당했다.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아마도 낸시는 조나단의 죽음을 본인의 죽임 이전에 다 파악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본인은 병에 걸렸고 이걸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전하기도 어려웠기에 언제인가 남편이 자신의 사후에 발견해주길 기대하면서 소설로 남겼고 사진 역시 증거 물품으로 남겨 두었다. 낸시가 아들 조나단의 죽음 이후로 얼마나 고통받으며 세상을 살아 갔고 자신 역시 얼마나 괴로웠는지 스티븐은 제대로 된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한다.
캐서린의 든든한 조력자인 로버트는 결국 열등감 덩어리
로버트는 초반에 캐서린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해 줄 거 같은 멋있는 남자로 묘사되었다. 아름다운 아내인 데다가 능력까지 좋은 캐서린을 찬미하고 사랑하는 멋진 남편의 존재가 바로 로버트였다. 애초에 돈이 많은 집안에서 자선 사업을 하면서 편하게 살아온 그에게 유일하게 자랑할 만한 건 바로 아름다운 부인이었을 거다.
그런 캐서린이 자신의 뒤통수를 세게 때릴 거라고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다. 아들 니콜라스에 대한 기대감도 무너진 마당에 이제 캐서린까지 자신의 뒤통수를 야구 방망이로 후두려 팰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러하기에 로버트의 캐서린에 대한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자신보다 더 큰 성적 만족감을 준 소년 조나단에 대한 질투심도 끓어 오른다. 이 오랜 세월동안 자신을 감쪽같이 속인 캐서린을 절대 용서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캐서린 역시 로버트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캐서린 본인이 모든 걸 통제하고 살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오래전에 그것도 하룻밤 불장난 수준의 일이었으나 이런 일로 인해 로버트의 신뢰감이 무너질 정도로 둘 사이의 관계는 약하디 약한 고리였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실망감을 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관계였다. 특히 온실에서 화초처럼 자란 로버트가 캐서린의 욕망과 의도적인 실수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찌 보면 가장 위선적인 사람은 로버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기에서 가장 비난 받을 악녀는 그 누구보다 캐서린이다. 단순히 사고사라고 생각하려고 했으나 역시나 캐서린은 조나단을 죽음으로 몰고간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람이며 아들을 구하고 나서 조나단을 구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제대로 날려 버렸다. 그가 얼른 죽기를 그 누구보다 비는 무당처럼 말이다.
캐서린의 욕망대로 조나단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캐서린에게 조나단은 섹스 토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조나단의 목숨을 살렸어야 하고 그 자리를 조속히 떠나 런던으로 돌아가서 만약 조나단과 마주친다고 해도 조나단을 미친 사람 취급하면 크게 문제될 일도 아니었다. 어설프게 일을 처리하다 보니 지금의 포탄을 맞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목숨을 건 조나단에게 캐서린은 죽음을 선물했다.
그 자체 만으로도 캐서린이 몰락하는 건 당위성을 가진다. 그 자체로 캐서린은 그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 만약 외도만 했다면 로버트에게만 용서를 받으면 될 일이지만 조나단을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 조나단의 부모는 물론 거의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신이라고 해도 캐서린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로버트의 부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면 본인도 그게 어떠한 의미인지는 알았어야 했다. 돈 많고 부유한 남성에게 아름다운 아내란 과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로버트에게 캐서린은 인형 같은 존재인데 아무래도 캐서린은 로버트를 너무 얕잡아 보았거나 아니면 로버트를 너무 과대평가한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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