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은 종이 한 장 차이
베스트셀러 소설을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강의 비밀은 두 소년의 평범하지 않은 우정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가벼운 로맨스 물일 거라고 생각 했는데 소재 자체가 우정이어서 그런지 이런 LGBTQ 물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도 가볍게 감상 가능한데 일단 트랜스젠더 소재가 나오기 때문에 애초에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점은 알아두는 게 좋다.에리크와 마누엘
두 소년은 마누엘의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할머니 집에 맡겨진 이후에 친해지게 되는데 초반에 누가 봐도 게이같은 마누엘에게 거부감을 느끼던 에리크도 독특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마누엘에게 스며들어 버린다. 하지만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누가 봐도 게이스러운 소년이 살아 남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에리크의 아버지는 에리크가 마누엘에게 물들까 봐 그리고 마누엘과 사랑에 빠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고향에서는 보지 못한 무셰라는 존재가 신기한 마누엘은 무셰에게 강력하게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셰라는 건 여장하는 남자라는 의미인데 이 시골 마을에는 무셰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하며 마을 사람들도 무셰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무셰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종종 축제에도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배척당한다.
그 사이에 계속 우정을 키워 나가던 마누엘과 에리크는 미국에 간 줄로만 알았던 마누엘의 어머니가 실은 죽을 병으로 마누엘의 고향에서 투병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9살의 나이에 남의 트럭을 몰래 얻어 타고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마누엘의 어머니는 결국 회복하지 못 하고 마누엘과 극적으로 상봉한 이후 목숨을 거둔다.
할머니와 같이 지내면 되지만 여자같은 마누엘을 못마땅하게 여긴 마누엘의 친아버지는 에리크 아버지의 연락으로 마을에 찾아와 반 강제로 마누엘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어린 아이 였기에 이 모든 걸 막지 못한 에리크는 평생 마누엘을 기다리지만 매정한 마누엘은 에리크에게 편지 한통 그리고 전화 한통 하지 않는다.
나중에 마누엘의 정신적인 스승이었던 무셰 솔란지가 별세하자 드디어 마을로 돌아온 마누엘은 반갑게 에리크에게 인사하지만 이미 어린 시절 첫사랑이자 절친이었던 파울리나와 결혼한 에리크는 갑자기 여성으로 변해 버린 마누엘이 어색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이야 아무것도 모를 때니 에리크와 마누엘 그리고 파울리나는 그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면서 우정을 쌓을 수 있었으나 성인이 된 지금은 생각할 게 많다.
그리고 그보다 에리크는 너무나 아름답게 변해버린 마누엘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이미 파울리나와 결혼까지 한 상태인데 갑자기 등장한 마누엘에게 마음이 빼앗기는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마누엘과 에리크만 아는 강의 비밀.
어린 시절 집안 결혼식에서 술에 취한 에리크의 삼촌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강 주변에서 에리크의 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괴로워하며 울던 마누엘을 발견한다. 여성과 결혼을 하고 있으나 원래는 무셰와 성관계를 가질 만큼 실질적으로는 게이였던 삼촌은 아름다운 마누엘을 발견하고 겁탈하려고 시도한다. 9살의 마누엘은 성인인 에리크의 삼촌을 쉽게 거부하지 못 하지만 마누엘이 걱정되어 강 주변으로 찾아온 에리크의 도움으로 삼촌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삼촌이 술에 취해 중심을 잃고 스러지며 강 바닥의 돌에 머리를 다치고 바로 구했다면 목숨 만은 건질 수 있었겠으나 겁에 질린 마누엘과 에리크가 도망을 가면서 결국 숨지게 된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만하지만 아이들의 판단력이 좋았다면 어른들에게 알려서 목숨 만은 건질 수 있었을 거라고 보기에 안타깝긴 한데 생각해 보면 삼촌이 살아 있었다고 해도 끊임없이 마누엘과 에리크의 입을 막으려고 괴롭혔을 터라 이러나 저러나 비극적인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에리크에게 마누엘을 겁탈하려던 삼촌은 에리크와 마누엘을 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이기에 어린 아이 죽인다고 해서 잡힐 일도 만무하고 멕시코의 부패한 경찰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대목도 아니기에 오히려 삼촌이 죽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다. 더 다행스러운 점은 설마 하나 아이들이 삼촌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서 사건이 이대로 사고사로 묻히려던 시점에 무언가를 발견한 경찰인 파울리나의 아버지는 마누엘과 에리크가 삼촌의 죽음에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솔란지로부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삼촌과 그 부인의 위엄을 지키려면 이 죽음을 밝히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고 결국은 사고사로 막을 내리며 마누엘과 에리크는 이 사고에서 극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물론 정신적으로는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에리크는 삼촌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힘들어 한다.
아무리 삼촌이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삼촌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충격은 어린 아이가 벗어나기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는 그런 디테일한 부분에서 감정 묘사가 조금 부족한 편인데 워낙에 이야기가 방대해서 그런지 생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렇게 사건의 비밀은 뒤로 한 상태로 헤어지게 된 마누엘과 에리크는 20년이 지나서 솔란지의 추모를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된다. 누구보다 마누엘을 반가워하는 파울리나와 달리 에리크는 이미 마누엘에게 마음을 한 번 빼앗기고 평생의 첫사랑으로 간직한 마누엘이 눈앞에 나타나자 티가 나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친구의 감정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반가운 상태로 마누엘을 맞이할 수 있었겠으나 이미 에리크는 마누엘을 처음 보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마누엘을 사랑하는지 절절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마누엘과 에리크의 등장을 반가워하지 않는 세력이 마을 안에는 생각보다 많았다. 특히 할머니가 남긴 유산인 오래된 집으로 향하니 집은 문이 잠겨 있고 어린 소년이 감금되어 잇다는 걸 발견하게 된 마누엘은 사태가 생각보다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이미 미국에서 학대를 당한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마누엘은 아이가 폭행은 물론 심상치 않은 일에 휘말렸다고 직감하고 경찰에 알리지만 경찰서에서는 어린 시절 자신을 죽어라 괴롭히던 친구가 서장으로 있는 걸 알게 된다.
원래부터 인성이 좋지 않았던 친구인데 갑자기 여성으로 등장한 마누엘을 보고 대놓고 적대심 및 호기심을 드러내던 경찰 친구는 결국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며 마누엘을 실망하게 만든다. 경찰에게 의지할 일이 없다 싶었던 마누엘은 결국 자신이 스스로 소년 에미를 도와주기로 마음 먹는다. 실제로 에미의 어머니 집까지 찾아 가지만 에리크와 함께 찾아간 에미의 마을 주민에게 에미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사망했고 외동 아들이라는 사실까지 발견한다.
에미는 마누엘의 할머니 집에서 분명 형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는 걸 기억한 마누엘은 이들이 인신매매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에미와 함께 살던 펠리페와 마을의 경찰 서장인 자신의 친구가 조직적으로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를 알게 된 경찰 친구는 마누엘과 에리크를 협박하게 되지만 결국 기지를 발휘한 마누엘에 의해서 에미는 구출되고 경찰 친구는 결국 죗값을 받게 된다.
모든 게 다 평화로우면 좋겠으나 마누엘과 에리크가 나누던 비밀스러운 대화를 엿듣던 파울리나는 충격을 받게 되고 어느 정도 오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에리크가 마누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던 파울리나는 에리크와 마누엘이 서로 사랑해서 자신을 떠날까 전전긍긍한다. 실제로 에리크는 마누엘에게 어느 정도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마누엘은 애초에 에리크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어서 그런지 둘 사이에서 스파크는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같이 밤을 보내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자 에리크도 마누엘을 절절하게 사랑하지만 이성적인 욕망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를 알게 된 파울리나는 결국 마누엘과 우정을 다시 회복하게 되며 마을은 다시 평화로운 시절로 돌아 간다. 그리고 마누엘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에미를 데리고 미국으로 데려 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에미에게는 절대로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하고 마누엘의 현재 미국 남자 친구인 아드리안 역시 마누엘을 이해해줄 만큼 좋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이야기가 좀 정신없이 흘러가기는 하는데 소년의 우정과 비밀스러운 사건이 겹치면서 생각보다 복합적인 드라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멕시코에서 만든 터라 완성도에서 조금 아쉬운 지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각본이나 연출 그리고 연기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의외로 재미있게 감상했다. 이 정도로 재미있을 거라고 아니 그리고 애초에 멕시코 드라마를 정주행할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 더 신기하다.
마누엘과 에리크의 우정은 어찌 보면 독특하지만 마누엘이 무셰라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소년들이 나누는 특별한 우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사랑과 우정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이며 육체적인 관계가 있어야지만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애초에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나 자신보다 더 걱정되는 타인이 있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고귀한 희생이나 매일 보고 싶다는 감정이 아니어도 나보다 더 걱정되고 안위가 신경 쓰인다면 그 자체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마누엘과 에리크 그리고 파울리나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고귀한 존재들이다.
천 명의 애인보다 소중한 친구 한 명이 낫다라는 이야기가 드라마 안에서 계속 나오는데 마누엘과 에리크처럼 영혼까지 나눌 만한 인연을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보다는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않고 일상 생활에서 지인들과 웃고 떠들며 지낼 수 있는 게 가장 큰 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인연은 말 그대로 극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멕시코나 남미 드라마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부패 경찰이 꼭 나오는데 이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범죄자보다 더 나쁜 짓을 많이 하는 게 이런 부패한 관료들인 듯한데 이 부분이 생각보다 술렁 넘어가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 이것도 남미 드라마의 특징이라고 관대하게 넘어가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보통 남미 드라마 특징이 이야기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고 한국과는 정서도 다르지만 실제로 시스템이나 현실도 분명히 다르기에 한국인의 정서로 이해하기에는 힘든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마누엘과 에리크의 아름다운 우정 만으로도 드라마 강의 비밀은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 어느 정도 허술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 우정의 진정성을 의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무셰들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후반부가 조금 막장스럽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각색도 잘했고 결말도 나쁘지 않았다.
총평
생각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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