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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드라마 디스클레이머 불편한 복수

통쾌하지 않은 복수

복수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기본적으로 복수는 억울한 사람이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당한 방식으로 법정 다툼을 하더라도 그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 보통 약자들이 강자들에 의해서 말도 못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려 하지만 이미 법은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제대로 된 복수는 오직 사적 복수만으로 가능하다. 

한국 사람만 사적 복수에 열광하는 건 아니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적 복수를 하는 주인공들이 유독 많아진 건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그러한 소재로 드라마는 유행한 지가 꽤나 되었고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제 사람들이 지겨워할 정도인데 이렇게나 많은 작품에서 사적 복수를 다루는 건 통쾌하기 때문이다. 법이 해결해 주지 못하거나 법이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는 참을 수 없는 괴로운 일에 대해서 현실의 나는 절대로 할 수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초인적인 힘과 방법으로 악당을 처절하게 무너뜨린다. 

그러하기에 드라마나 영화 안에서 보여지는 복수는 언제나 통쾌하다. 

그리고 그러할수록 복수를 결단하는 피해자는 숭고해 보이고 무조건적인 선인처럼 그려진다. 이들이 복수를 하는 방법이나 수단은 불법적이며 도덕적이지 않으나 이들의 목적이 이 모든 걸 무력화 시킨다. 오히려 더 잔인하게 복수하지 않으면 아쉬울 정도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무자비하게 복수하는 피해자가 감정 이입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나 역시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나를 함부로 대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는 상상을 한 두 번 해 본 게 아니다. 하지만 소심한 방법으로도 단 한 번을 복수해 본 적은 없다. 아마 대부분의 소시민이 그러할테다. 복수라는 건 상상에서 그치고 만다. 실제로 복수를 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주 없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극적인 복수는 꿈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그러하기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디스클레이머로 뻔한 복수 이야기를 하려는 듯해서 조금 의아하긴 했다. 이렇게 사골같은 소재를 왜 들고 온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5화를 보면서 감독의 의도와 주제 의식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조나단의 아버지 스티븐이 캐서린에게 복수를 한 이후 남편인 로버트와 아들인 니콜라스까지 곤혹스럽게 만드는 장면에서 숨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스티븐의 복수를 지켜 보면서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복수를 할 건지 감이 잘 잡히지는 않으나 통쾌하다기 보다는 불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들인 조나단이 죽어 버린 원인 중 하나인 캐서린에게만 복수의 칼날이 향하는 게 아니라 다소 애꿎은 피해자인 로버트와 니콜라스에게까지 향하는 걸 보면서 거북한 마음을 지우기 어렵다. 

캐서린의 죄를 눈감아 준 것도 아니며 캐서린의 원죄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오직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연스럽게 복수의 대상이 되었다. 이해는 가지만 납득하기는 어렵다. 그러하기에 복수를 하는 피해자 중 한 명인 스티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그저 노년의 한가한 시간을 복수에 이용하기 위한 도구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애초에 부인이었던 낸시처럼 아들 조나단의 죽음에 대해서 그리 깊게 파지도 않았던 인물이 아니던가. 

이제 와서 너무 늦은 복수는 정당성을 획득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소설은 캐서린의 실제와 아주 같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낸시가 상상해서 써낸 결과물이 아니던가. 진실은 캐서린 만이 알고 있을 건데도 불구하고 스티븐은 캐서린을 단죄하기로 결심한다.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여자에 눈 먼 아들이 애매한 수영 실력 하나 믿고 바다로 뛰어 들었기에 당한 일이 아닌가. 

캐서린의 행동이 타당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스티븐이 과연 누구를 위한 복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싶다는 거다. 캐서린이 당하는 일을 보면 요즘 일어나는 일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유명인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하면 대중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서 보자면 이들의 그렇게까지 큰 잘못을 했던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미 돌을 던진 후라 후회한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는다. 디스클레이머에서도 나오지만 남편과 아들은 물론 캐서린 주변인물들은 아무도 캐서린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치매에 걸린 친 어머니 만이 캐서린의 이야기에 귀를 빌려줄 뿐이다. 

처음에는 캐서린이 빌런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드라마를 보면서 최종 빌런은 스티븐이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앞으로 남은 두 회차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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