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유쾌한 범죄 드라마라니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웃음이 나온다.순간 내가 갑자기 소시오패스가 된 건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사람이 쓸려 나가고 몇 명이나 죽어 나가지만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런 지점이 명상 살인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보통 누군가 죽어 나가면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들지 마련이고 주인공의 안위 보다는 살인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드라마 명상 살인에서는 누군가를 죽이는 주인공 변호사 비외른을 응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비외른 디멜이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것도 아니다.
비외른은 마피아를 고객으로 둔 만큼 누가 봐도 세상물정에 밝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오직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만 행동한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고약한 할머니 비서의 집을 위험에 빠뜨리게 해 놓고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비외른은 어찌 보면 새로운 현대인의 도덕 수준을 보여준다.
정의롭지 않으며 돈에 환장하고 자신의 이권을 내려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은 느껴지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마피아를 정성껏 보좌할 수도 있다. 마피아가 저질러 놓은 똥을 치우면서 돈을 벌어 왔다. 양심이나 도덕 따위 내려 놓은지 오래다. 이제 와서는 별거 중인 부인과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위해 살고 싶다. 그로 인해 명상을 시작하게 되는 비외른은 살인을 하는 과정에서 명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사실상 명상의 도움을 자기 합리화에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인데 위기의 순간 순간마다 명상은 도움이 된다. 평소의 비외른이었다면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폭발했을 테지만 순간에 집중하라는 명상의 가르침은 비외른을 단순하고 명료한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 이 변화가 의외로 설득이 되는 터라 비외른이 다음에 어떠한 행동으로 나를 놀라게 만들지 은근 기대하게 된다.
처음부터 마피아 보스인 드라간을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다. 딸과 보낼 주말을 위해 살인을 하고 도피 중이던 드라간을 잠시 잠깐 트랑크에 놓아 두었을 뿐이다. 날이 선선했다면 상관없지만 트렁크 안의 온도가 100도 가까이 오르는 여름날이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비좁고 답답하게 마피아 보스는 죽어 나간다.
딸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으나 문제는 시체 처리인데 더 큰 문제는 마피아 조직 내에서 드라군이 살아 있다는 걸 믿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드라군의 손가락을 절단하고 드라간 만의 독특한 소통 방법을 알고 있던 터라 이는 큰 문제가 되질 않는다. 오히려 문제라면 드라간을 추적하는 경찰과 조직을 배신하고 있는 토니의 존재다.
비외른은 거의 매 순간마다 위기를 맞이한다. 마피아를 보좌할 뿐 직접적인 마피아의 더러운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비외른이기에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실수도 많이 하고 고생도 많이 하지만 애초에 도덕 수준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냉철하게 판단하고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그리고 비외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 수도 있으나 오로지 가족과 특히 딸에 대한 사랑이 끔찍할 정도다. 애초에 보스를 죽인 것도 딸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면 더 그러하다. 가장의 무게는 아무리 돈을 잘 버는 비외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비외른이 큰 돈을 벌기는 하지만 마피아 보스에게 노예처럼 굽신 거리며 그가 흘린 죄나 실수들을 주워 담으면서 살아온 인생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으나 비외른은 변호사 출신다운 청산유수 화법과 뛰어난 지능으로 이 모든 위기를 이겨 나간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조력자까지 생긴다. 애초에 마피아 조직 내에서 충성심이라는 건 자기 이득에 따라서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동전보다 가벼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보면서도 생각한다.
나는 왜 비외른을 응원하고 있지? 아무리 마피아라고 해도 비외른은 살인자가 아니던가. 자신이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이기심에 근거해서 살인을 했고 이후에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그리고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비외른은 더 많은 살인과 위험한 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외른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비외른이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자 그리고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니다. 비외른은 고작 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 주말까지 노예처럼 비외른을 아무 생각없이 불러 내는 드라간은 마치 퇴근 후에도 전화나 문자로 일을 시키는 직장 상사가 떠오른다. 먹고 살기 위해서 평범한 소시민이 어떠한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자극으로서 명상 살인은 이솝 우화보다 더 현실적이다.
결국 서민은 최종 보스인 악당을 제거하고 본인이 모든 걸 통제하는 자리에 올라야지만 진정으로 가정도 지키고 본인도 지킬 수 있다. 드라간이 죽지 않았다면 비외른은 여전히 주말없는 삶에 이어 가족 없는 삶에도 적응을 해야 하는 위치다. 특히 보스는 수습도 못할 실수와 자신이 싸지른 모든 똥을 비외른이 치우게끔 만들며 이에 대해 미안해 한다거나 노력을 치하한다거나 하는 것도 없다.
오히려 비외른은 드라간의 똥 닦는 휴지보다도 못한 존재다. 필요 없으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고 그보다 더한 경우 존재조차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보스가 BMW 트렁크 안에서 죽어 나갈 때 묘하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이후 비외른에게 닥칠 일들이 걱정이 되긴 하였으나 어차피 인생은 어떻게 진행이 될 지 절대 모르는 데다가 의외로 인간의 임기응변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터라 잠시 잊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미 3권까지 출간된 독일의 인기 소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명상 살인은 아마 시즌 1이 인기를 모은다면 시즌 3 까지는 무난하게 나올 만큼 재미있다. 연출이 신선한 데다가 각본도 탄탄하고 배우들의 존재감이나 연기도 좋아서 의외의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총평
생각보다 재미있고 기대 이상으로 탄탄한 이야기
평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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