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청량감의 시각화
일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시원시원한 맑고 청량한 느낌을 1화부터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애니메이션 푸른 상자는 스포츠를 배경으로 한 성장 학원 드라마이다. 기대를 전혀 안 하다가 첫방송 후기가 너무 좋아서 넷플릭스에서 보게 된 건데 왜 넷플릭스 공개인 건지는 TBS 방송사라서 그러하다. 이 방송사는 넷플릭스와 다년간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어서 독점 공급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방송사들이 점점 더 많아질 수도 있어 보인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주저함이 있었겠지만 넷플릭스에서 보여주는 규모의 경제는 다른 경쟁사가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초반에야 디즈니나 워너 브라더스에서 넷플릭스를 잡겠다고 난리를 치긴 했는데 아마존도 이 치킨 게임에서 결국 한 발짝 물러난 것만 봐도 쉬운 싸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돈줄이 점점 마를 텐데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독점 공급하는 회사가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역시 멤버십 서비스로 넷플릭스와 연계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넷플릭스 국내 구독자수가 더 늘어날 게 자명해서 얼마나 더 커질지 그리고 이게 과연 긍정적인 요소만 있을지도 의문이다.
뭐 이런 이야기는 지루하니 이 정도 하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푸른 상자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본다면, 사실 냉정히 말하면 설정이나 캐릭터 자체는 일본의 흔하디 흔한 청춘 스포츠 성장 로맨스 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씩씩하고 직진 밖에 모르는 건강한 소년 타이키와 여리여리하지만 누구보다 운동에 진심인 비현실적인 소녀 캐릭터 치나츠 선배가 중심이 되어 하이틴 소년 소녀들의 성장을 다룬 학원물인데 일본에서는 이렇게 유독 운동을 중심으로 한 스포츠 성장 서사가 많다.
왜 그럴까.
그건 바로 일본 현실에서도 이런 운동 활동을 학교에서 적극 권장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내 주변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창 시절 부 활동을 여러 개 하고 그 중에서 운동부도 들어가 있다 보니 학창 시절에 공부에 몰입하기 보다는 운동이나 다른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정말이지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일본은 아무래도 우리 나라보다 입시 경쟁이 상대적으로 치열하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우리 나라는 교육 시스템이 너무 학업에만 맞추어진 터라 공부 외에 다른 걸 하려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상 시도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 있다. 미술이나 체육도 취미로 하기 보다는 대학 진학을 위한 맞춤 학원까지 있는 나라가 아닌가. 일본이 그런 학원 시스템이 없는 나라는 아니지만 우리 나라 보다는 대학 진학율이 높지 않고 대학을 가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기에 상대적으로는 자유롭다고 들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 실제로 운동을 많이 하다 보면 다른 활동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원래 운동하면서 이성을 만나면 호감이 더 갈 수 밖에 없다. 연애 프로만 봐도 같이 몸을 쓰는 활동을 같이 하게 되면 호감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고 이건 과학 실험으로도 증명이 된 바 있다. 특히 호르몬이 왕성하게 나오는 십대 시절 같은 공간에서 운동을 같이 하는데 호감이 있는 상태라면 사랑에 안 빠지는 게 오히려 불가능한 일이다.
타이키는 애초에 치나츠 선배를 동경하고 있었는데 매일 새벽 운동 시간마다 마주치는 터라 호감도가 더욱 올라갔고 사실 치나츠 선배는 누가 봐도 모두가 좋아할 만한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건 치나츠 선배의 가족이 갑자기 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학창 시절 같이 농구를 한 타이키의 엄마와 치나츠 선배의 엄마의 인연 덕분에 치나츠 선배는 졸업하기 전까지 타이키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거 너무 위험한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혈기왕성한 십대 소년 소녀들을 같은 공간에 두는 거 자체가 위험하기 그지없는데 애초에 성인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보니 큰 일이 벌어질 거 같지는 않다. 그래도 저게 현실이라면 절대로 말리고 싶은 건 사실이다.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두기도 어렵고 부모가 모든 걸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런 조건을 두는 거 자체가 모두에게 고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청량감이 살아나지는 않겠고 애니메이션에서 그럴 리도 없겠지만 현실에서 저런다면 정말 아찔하긴 하다. 주요 소재로 농구와 배드민턴이 나오는 듯한데 나름 시각 효과도 좋고 작화도 괜찮아서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데다가 음악도 괜찮은 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돈이 없어서 거의 죽어 가다가 넷플릭스 자본의 유입으로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고 하던데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저렴한 제작비고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을 만족시킬 수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넷플릭스 자본으로 숨통이 트이게 되었으니 상부상조라는 건 바로 이런 거라고 할 수 있다.
25부작으로 매주 한 회차씩 공개가 되는 터라 완결되려면 무려 반년이 넘게 걸리겠으나 매주 챙겨볼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다. 캐릭터가 전형적이긴 해서 누구보다 아는 맛이긴 한데 그래서 더 재미있다.
총평
아직 초반이지만 존잼의 냄새가 난다.
평점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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