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하고 묵직한 범죄 스릴러
한동안 공중파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OTT가 범람하는 시대에 공중파나 케이블 드라마는 흥미가 가질 않았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역시 넷플릭스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아마 감상하지 않았을 테다. 원래 전략대로라면 웨이브에서만 감상 가능했을 테지만 최근 공중파 드라마들을 웨이브 아닌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리긴 했다. 이제 본방송을 시청하는 시대가 아니기에 이런 기조는 환영할 만하다.
넷플릭스에서는 게다가 자막도 제공해주고 있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작가와 PD의 드라마여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더 수작이어서 감탄하면서 시청한 드라마가 바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였다. 1화를 보고 나서 흥미롭기에 다음 날 바로 2화를 시청하게 되었다. 10부작의 드라마인데 이 정도로 쫀쫀하게 이야기를 잘 이끌어 나가는 거 자체가 신기하고 드라마 자체도 영화 퀄리티여서 보면서도 매 장면 장면마다 감탄하게 된다.
결말을 봐야 정확하게 판단 가능하겠지만 각본도 훌륭하고 연출은 더 괜찮다. 그리고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한석규는 젊은 시절 전성기에는 영화판에서 주로 활동하는 배우였으나 이제는 드라마에서 더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다. 한석규가 원톱인 드라마로 봐도 무방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녀가 중심이되는 스릴러인 터라 한석규가 맡은 장태수 외에도 딸인 장하빈 역할의 채원빈 배우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오히려 무게감만 따지자면 한석규와 채원빈 배우가 거의 동급이다.
채원빈 배우는 처음 보는 배우인데 한석규와 대척점에 서서 스릴러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분명 있었을 텐데 카리스마와 존재감이 감탄이 일 정도로 좋다. 이 배우를 무조건 기억해야 할 거 같다는 강력한 느낌을 받았다. 한석규의 존재감을 이기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데 표정 하나 그리고 뒷모습까지도 연기하는 게 너무도 비슷할 정도여서 한석규 이상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 게 바로 채원빈이다.
그리고 노재원 배우는 역시나 알 수 없는 기묘한 구대홍 경장을 맡아서 역시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 동안의 행보를 보면 평범한 역할이 하나도 없을 정도인데 그때마다 찰떡같이 소화해서 신기할 정도다. 한예리는 뭐 당연히 말 할 것도 없이 좋다. 한예리가 가진 무게감은 오직 배우 한예리 만이 가질 수 없는 존재감인데 장태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어진 경장을 맡아 믿고 보는 배우라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누구를 믿어야 하나
신뢰라는 문제에 있어서 확실하게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가족이라고 해서 과연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 장태수는 딸인 장하빈을 과연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믿고 싶으냐 마느냐의 문제는 여기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범죄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딸인 장하빈이 그 안에서 무슨 역할을 했느냐가 중요하지만 그 동안 딸과 관계가 소원했던 태수는 하빈과의 관계에 있어서 오로지 깊은 절망감을 느낄 뿐이다.
게다가 딸 하빈은 죽은 아들 하준의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아직 하준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이게 정말 사고이긴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다 나온 게 아니며 하빈의 어머니이자 태수의 전 부인 윤지수는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게 자살이 맞긴 한 건지도 알 길이 없다. 작가는 일부러 초반부터 상당히 많은 정보에 대해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답답한 전개일 수도 있으나 그 편이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에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
본격적인 장르물 드라마
장르물 드라마는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장르물을 만드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만들 수 있으나 잘 만들기는 어렵다. 게다가 장르물을 만들다가 재미를 잃거나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드라마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미국이나 영국 드라마 포함 최근 이 정도로 중심을 제대로 잡고 정방향으로 나아가는 스릴러 드라마는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작가 배우 감독 모두 마음에 들지만 한석규를 제외하고는 이 드라마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배우가 작품의 완성도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지만 전개가 느린 이 드라마에서 한석규가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존재감은 숨이 막힐 정도다. 손가락 하나와 뒷모습으로 연기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 가볍게 넘기기 힘들다. 실제로 한석규는 뒷모습만 나오는 장면에서도 누구보다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태수라는 캐릭터가 신선하지 않은 데다가 클리셰가 넘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감탄이 나온다. 일에 대해서는 완벽하지만 일에 몰두하느라 가정에는 소홀했고 딸과의 관계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형편없는 가장이다. 게다가 딸이 연루된 범죄 사건을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딸은 여느 때보다 더 낯설다. 어린 시절부터 딸이 낯설다고 느껴온 태수이지만 10대 후반의 딸 하빈은 낯선 이보다 더 차갑다.
아직 초반이어서 더 봐야 하겠지만 2화까지 본 지금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 정도로 각잡고 제대로 스릴러를 말아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서 더 놀랍고 이제 어설프게 따라한 게 아니라 그 어떠한 장르물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완성도가 높아서 까무러칠 만하다. 작가나 감독이 칼을 갈았다는 느낌이 제대로 든다.
현재 주말 드라마 라인업이 치열한데 그 전쟁터 안에서 본격 장르물로 얼마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지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새롭게 시작한 주말 드라마들의 평가가 다 괜찮아서 대진운이 상당히 안 좋기는 하다. 일단 다른 드라마 정년이와 정숙한 세일즈도 챙겨 보긴 하겠지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챙겨보게 될 듯하다.
총평
기대 이상의 스릴러 수작
평점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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