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기업 하이퍼 리얼리즘과 달달함 사이 그 어딘가
역시나 만화 원작의 BL 드라마 퍼펙트 프로포즈인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드라마 정주행하고 나서 알라딘 전자책으로 원작 만화도 바로 감상해 보았다. 드라마 각색이 거의 없고 원작 만화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드라마인데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히로가 다니는 블랙 기업의 회사원들의 비중이 꽤나 높아진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블랙 기업의 현실을 보여준 점이 새로웠는데 우리 나라도 이런 기업이 적지 않아서 왜 한국과 일본은 서로 그렇게 싫어하면서 안 좋은 건 이렇게나 닮아 가는지 의아할 정도였다.초고령화도 그렇고 직장인들 골수를 빼먹는 것도 참 비슷한 게 많은 나라라는 생각만이 든다. 나는 회사 생활을 오래 하긴 했으나 눈치껏 몸과 마음이 편한 곳에서만 일했었기에 블랙 기업에서 일한 경험은 단연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대학 학벌이 좋아서 이름난 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고 학창 시절에 영어를 열심히 한 덕분에 영어 회화 실력으로 외국 회사에 들어가서 신나게 놀다가 이제는 혼자서 일하고 있는데 그래서 블랙기업에서 일하고 혹사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처절하게 하는 드라마가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카이 역할을 맡은 노무라 코타의 매력이 괜찮아서 보기 시작했는데 중반부 이후로는 히로가 다니는 블랙 기업이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해서 그리고 히로가 과연 회사를 그만둘 건지가 심각하게 궁금하여 계속 감상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결국 히로는 회사를 그만두긴 하지만 뭐 그런 결말일 거라고 예상을 하긴 했으나 일본의 악덕 기업이 저 정도라는 게 조금 믿기 힘들었다.
그래도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 중 하나 아닌가. 한 때는 지금의 중국처럼 미국을 경제적으로 넘긴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나라인데 버블 경기 붕괴 이후 일반 서민들의 복지는 나락으로 간 것도 사실이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일본은 회사에서 하는 회식조차 회사 법인 카드로 결제하지 못하고 각자 각출해서 하는 게 정상이라고 들었다. 우리 나라도 한창 경기 좋을 때에는 회식을 자주 했으나 이제는 회식도 거의 안 하며 하더라도 점심 시간에 한다고 들었다.
이런 연유로 자영업이 박살나고 있기도 한데 생각해 보면 애초에 그동안 너무 흥청망청 쓸데없는 회식이 많았다는 생각도 든다. 꼰대들이야 회식하면 단결이 되고 단합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결국 회사원들을 단합시키는 건 제대로 된 리더가 채찍과 당근을 적절한 시기에 제공하는 건데 나 혼자 만의 생각이지만 회식할 돈으로 보너스라도 주는 게 회사원들에게는 애사심을 높이는 기폭제가 된다.
일본은 블랙 기업 문화가 생각보다 일반적인 듯한데 모든 회사가 다 그러진 않겠으나 히로처럼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자신이 함몰된 상태로 일하는 직장인이 꽤 많은 듯하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일본의 최대 광고 홍보 기업에서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명문대 사원이 자살을 선택해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도 크게 변한 건 없긴 해서 누구 하나 죽어도 뉴스에만 잠깐 나올 뿐 근본적으로 바뀌는 건 없구나 싶어 안타까울 지경이다.
결국 일본이나 한국이나 점점 가면 갈수록 아이를 안 낳고 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더 아이를 안 낳는 건 대한민국이 일본이나 타국 대비 경쟁이 더 심각하고 유교 문화가 더 깊숙하게 들어와 있어서 남들과 비교하는 문화도 심한 데다가 박탈감마저 심각한 터라 젊은이들이 일본처럼 계층화가 되는 게 아니라 아예 일을 안 하고 집에 틀어 박히는 일도 안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오타쿠같은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들 위주로 그렇게 집에 틀어 박힌다면 한국은 멀쩡하게 사회 생활 잘 하고 교육도 잘 받은 사람들이 그런다는 점이 큰 차이이며 나는 이게 10년 정도 지나면 심각한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거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히로의 회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일본도 취업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일과 삶의 균형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라는 구호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정치인들은 알까. 드라마는 그런 블랙 기업을 너무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기가 막힐 지경인데 이게 현실보다 더 미화가 된 터라 더 안타까웠다. 예전에 만난 도쿄에 사는 일본인 친구도 정직원이 되면 야근도 매일 해야 하고 책임감도 늘어나는 터라 자신은 죽어도 정직원은 안 하고 시간대로 돈을 받는 파트 타임으로 일할 거라고 해서 좀 이해가 안 갔는데 드라마 퍼펙트 프로포즈를 보면서 그 친구가 드디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히로와 카이의 서사도 흥미롭다. 드라마는 이 둘의 서사와 블랙기업의 이야기 두 가지를 메인으로 가다 보니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긴 한 거 같은데 큰 줄기의 서사가 두 개이다 보니 잘 만든 BL 드라마라는 생각은 사실 들지 않았다. 오히려 히로와 카이의 서사에 더 방점을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히로와 카이는 어린 시절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인데 당시 어렸던 카이는 부모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한 상태였고 히로는 그런 카이를 그냥 두고 보기 어려워 같이 이야기를 하며 관계를 쌓아 나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카이는 아버지의 전근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으나 아버지 역시 카이를 버리고 잠적하며 무전 취식을 하다가 걸린 식당에서 몇 년간 일손을 돕다가 주인 아저씨가 쓰러지며 갑자기 히로를 찾아오게 된 터였다. 여기서 카이의 캐릭터를 한 번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게 어린 아이이지만 부모에게마저 버림받은 터라 인생에 대한 기대치가 아예 없는 인물이다. 그런 카이가 그나마 의지하는 게 히로인데 카이는 히로가 너무나 좋지만 자신이 히로에게 주는 무게감을 견디다 못해 결국 히로의 곁을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 히로 역시 카이에게 스며들었고 둘은 마지막 프로포즈와 함께 같이 여생을 보내기로 한다. 여기에서도 히로와 카이의 서사가 영원한 사랑에 기반하는데 이것 역시 BL 만화의 주된 구독자 층이 누구인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겠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꽤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카이를 보고 히로 역시 자신이 회사를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고 느끼게 되며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히로는 회사에 대한 기대를 그리고 카이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잃고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는데 서로 만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그 누구보다 완벽한 보완재가 되어 주면서 막을 내린다. 둘이 식당이나 브런치 레스토랑을 차려 같이 운영하는 결말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카이는 요리하고 히로는 경영을 하면 꽤나 멋진 맛집이 되지 않으려나.
총평
블랙기업 이야기인지 BL 드라마인지 헷갈리지만 노무라 코타 덕분에 재미는 챙겼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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