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누구인가
이제 다음 주면 파친코 시즌2가 막을 내린다.아직 공식적으로 시즌3와 시즌4 제작 발표가 난 건 아니지만 작품성이 워낙에 대단하고 화제성도 괜찮았기에 무난하게 리뉴얼이 될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미 세트장도 다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러한데 캐나다에서 주로 촬영한 거 치고는 세트장을 정말 잘 만들어서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장소 자체가 한정적이다라는 느낌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애플 티비 플러스는 애매한 드라마나 시리즈도 리뉴얼을 해주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서 파친코 같은 경우 무조건 후속 시즌이 결정이 될 거라고 보는 게 나의 시각이다.
이번 7화 에서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꽤나 굵직한 이야기들이 마무리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진 건 아무래도 경희와 창호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원폭을 맞아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이후 경희는 창호와 나눈 입맞춤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곱게 자란 경희인 만큼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게 당연해 보이며 남편의 패배주의가 이런 경희의 죄의식에 더 불을 질렀을 게 확실하다.
결국 큰아버지는 노아와 모자수의 부축을 받고 5년 만에 외출을 해보긴 하지만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살아 가기는 불가능하다. 노아의 큰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본 원폭 피해자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분은 직접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원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의 자녀였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큰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앞에서는 말을 못 해도 뒤에서는 얼굴이 흉하다고 뭐라고 한 기억도 난다.
그 분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자영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원폭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는 힘들다. 오펜하이머에서도 나온 거지만 미국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기는 했다. 어떻게 보면 전쟁에서 치트키를 쓴 거긴 한데 우리가 너무나 미국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터라 일본이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역사는 항상 승자 중심으로 쓰여지는 터라 나는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긴 게 아니라 자신들이 먼저 만든 살상무기로 무력화시킨 건데 애초에 전쟁이 아니라 폭격 수준이기에 미국이 참 치사한 수법을 일본에만 유독 많이 쓴다 싶기도 하고 심지어 지금 미국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를 봐도 미국은 공정한 싸움 자체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일본 내부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반미 주의 사상이 들끓어 올랐고 모르긴 몰라도 치가 떨리게 파렴치한 친일파들을 그대로 등용한 미군의 남한 지원이 많은 서민들의 불만을 끓어 오르게 만든 주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토록 힘들게 광복을 이루었는데 정작 사회 고위층은 친일파들로 득시글하다면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고 해도 모두가 잘 사는 평등을 강조하는 북한 공산주의에 동조했을 거 같다.
지금에 와서야 북한이 저 정도로 망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테지만 1980년대만 해도 북한과 남한의 경제 규모는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오히려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 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나라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나라만큼이나 경제력이 괜찮았고 특히 자원이 많아서 북한 같은 경우 자원 수출로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효율성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북한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던 데다가 자연 재해가 겹치고 바보같은 정치력이 한 몫 단단히 하며 나라가 망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살던 제일 교포들 역시 북한으로 많이 넘어갔다. 당시 잘 살던 일본에서 왜 북한까지 가서 사서 고생이냐고 할 수도 있으나 당시 일본에서 제일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건 차별을 평생 감내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그래도 차별을 받지 않을 북한으로 넘어간 거였다.
하지만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기 불가능한 구조였기에 그때 간 사람들은 지금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아들 세 명은 모두 북한으로 보낸 나이 드신 제일 조선인은 일본에 남아 있던 딸과 함께 주기적으로 북한을 방문해서 아들과 아들이 꾸린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일본으로 돌아와서 딸이 아버지에게 아들 모두를 북한으로 보내는 걸 후회하냐고 질문하자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을 하지 못 한다.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현재에 기반하여 미래를 읽을 뿐이다. 창호 역시 당시에는 옳은 사상을 전파하는 공산주의에 이끌렸을 거다. 문제라면 사상에 기반한 나라가 그대로 굴러 간다는 보장을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이며 평등과 기본 소득을 강조했으나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극심하게 차별이 만연해 있으며 계급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김씨네 일가와 거기에 기생하는 권력 말고는 인간다운 삶조차 보장이 되지 않기에 더 그러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현실과 이상은 분명히 다르며 오히려 한수같은 인물이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한다고 볼 수 있다. 한수는 이상을 보지 않으며 지금의 세태를 정확하게 직시하는 인물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을 위협하거나 언제라도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별다른 죄책감 없이 없애버릴 수 있다. 그런 한수가 유일하게 애정을 쏟는 건 바로 선자와 노아다. 선자는 유일하게 사랑한 여성이며 노아는 그 여성과의 사이에서 나온 유일무이한 혈육이다.
소유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수도 어쩌면 선자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이지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고 온 몸을 다해 열렬하게 지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 아닌가. 한수의 일본인 아내와 아이들이 드라마에 전혀 나오지 않는 것만 봐도 한수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선자와 노아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늙은 선자가 의심쩍은 일본인 사내와 우정을 쌓아 나가는데 아들인 모자수가 그 사람의 뒷조사를 통해 무언가 구린 냄새를 맡고 어머니인 선자에게 알리지만 선자는 이야기한다. 나의 외로움은 누가 달래주느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나도 나이든 부모님이 있다 보니 모자수의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이 드신 부모님은 어찌 보면 성인이 된 자녀에게는 어린 아이와 다름없다.
하지만 선자 역시 할 말은 있다. 일찍이 이삭과 사별하고 한수와도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이어온 게 아닌 터라 나이 든 선자는 이제 외로울 시기다. 그런 시기에 눈앞에 짠하고 나타난 멋진 일본 남성은 그 의도가 의심이 가긴 해도 선자 입장에서는 친구나 다름 없다. 지금 나이에 와서 사랑을 하고 이런 것도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물론 이 남자가 선자 앞에서 자꾸 돈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조금 어이가 없긴 하지만 말이다.
가끔 보면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번 늙은 남자가 어린 가정부와 사랑에 빠진 이후 모든 재산을 가정부에게 넘겨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테다.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나이 들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보다는 외로워지기 때문에 자식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제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자신의 재산만 보고 다투는 자식들보다는 말이라도 부드럽게 하는 낯선 이가 더 의지가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선자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남자 복은 더럽게 없는 사람이다. 그나마 사랑했던 이삭은 옳은 일을 하다가 감옥에서 병을 얻어 죽게 되었고, 몸을 달뜨도록 애정을 느꼈던 한수는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는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감정이나 연애 감정은 느낄 사이도 없이 장사만 하면서 고생하며 살아 왔다. 자식들은 키워 냈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은 없었던 세월이다.
노아는 와세다 대학에 들어가고 경희는 창호에게 이별을 고하고 한수는 자신을 배신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장인 어른을 손에 피하나 묻히지 않고 잔혹하게 살해한다. 파친코 초반만 해도 한수는 좋은 말을 해주기 힘든 인물이었는데 내가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수가 저렇게 하는 게 세상 사는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면 벌써 마지막회다.
대단한 반전이 있다고 하던데 무엇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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