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일본의 여성 프로 레슬링 붐을 일으킨 역대급 인물 덤프 마츠모토(마츠모토 카오루)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극악여왕이 넷플릭스에서 독점으로 공개 되었다.
소재만 보고는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궁금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1화는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순식간에 마지막인 5화까지 마무리하게 되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재미있는 드라마이다.
나는 이게 실화인지도 모르고 보다가 너무 이야기 자체가 실화 같아서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실화였다는 걸 알게 되고 더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프로 레슬링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크게 인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내가 살던 시절보다 더 오랜 시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격투 스포츠 중 하나였다고 알고 있다.
지금은 프로 레슬링에 각본이 있다는 게 만천하에 알려지며 과거와 같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 하고 있지만 과거만 해도 아니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인기를 구가하는 스포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특히 1980년대는 일본에서 여성 프로레슬링 경기의 인기가 상당했다고 한다.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인기 많은 선수는 음반도 발매하고 드라마에서 연기까지 했던 걸 생각해 보면 그 인기가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덤프 마츠모토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주변 인물들이나 마츠모토 카오루의 가족 이야기도 나와서 스포츠 드라마 라기 보다는 한 개인의 일대기적인 느낌이 나기도 한다. 물론 프로 레슬링 시합을 제대로 다루어주긴 해서 스포츠 드라마가 주라고 봐도 무난하다. 나는 프로레슬링은 전혀 본 적이 없긴 한데 후기를 보면 경기 장면을 꽤나 리얼하게 재현을 했나 보다.
배우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한 것으로 보이는데 누가 봐도 위험한 장면은 카메라 앵글을 뒤로 빼는 거 보면 배우만큼이나 스턴트 배우들도 고생을 정말 많이 한 거 같다.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이나 좋다.
타이틀 롤을 맡은 유리안 레트리버의 연기도 좋았으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요 치구사 역할을 맡은 카라타 에리카의 연기도 좋다. 뭐 다들 알다시피 카라타 에리카는 영화 아사코로 단숨에 기대주로 떠올랐다가 같은 영화에 나온 유부남 배우와 불륜을 한 게 만천하에 공개되며 거의 사장될 뻔했는데 이번 드라마에 나온 거 보면 일본은 불륜 자체에 대해서 참 관대한 거 같기는 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도 배우 김민희가 홍상수 감독과 헤어진 상태였다면 홍상수 감독 영화를 제외하고도 활발하게 활동했을 텐데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거의 은둔의 여배우처럼 현재는 활동하고 있다. 카라타 에리카 역시 당연히 지금은 히가시네 마사히로와 헤어진 상태인데 히가시데 마사히로 역시 큰 작품에는 못 나오지만 소소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다. 최근에는 자신의 팬이라는 여성 3명과 산 속에서 생활을 하는 영상이 나오기도 했는데 참 대단한 사람같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다.
이야기가 잠시 딴 곳으로 새긴 했는데 드라마 극악여왕이 재미있는 건 실화 자체도 재미있지만 연출과 각본이 굉장히 좋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어차피 실화이기에 어느 정도 가공이 필요한데 일종의 성장 서사로 제대로 만들어 냈으며 덤프 마츠모토에게만 집중한 게 아니라 그 당시 프로 레슬링을 하는 선수들의 애환을 제대로 담아내었다는 측면에서 극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5부작의 드라마여서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당시 여성 프로 레슬링의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보여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돈을 벌어야 하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업이다 보니 승부 조작이 만연했고 내부적으로는 이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진지한 스포츠라고 보기에는 2% 부족한 스포츠 경기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소속된 회사에서 시키면 거의 복종을 해야하는 분위기였고 아무리 인기가 많은 선수라고 해도 거부하긴 힘들었다.
그리고 실력보다는 스타성이 더 중요한 산업이었다.
마츠모토 역시 초반에는 실력도 애매하고 스타성도 전무한 터라 영업을 뛸 정도였다고 하던데 같이 데뷔한 동기들이 다 스타가 될 동안 마츠모토는 거의 무명에 머물렀다고 한다. 드라마 안에서는 마츠모토가 각성한 계기로 가족을 들고 있는데 그 당시 마츠모토 가족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으로 아버지는 두 집 살림을 하던 분이었고 어머니는 가난하지만 두 자매를 열심히 돌보던 힘없는 가장이었다. 돈이 필요할 때만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하자 그러한 분노를 덤프 마츠모토 캐릭터를 만드는 기원으로 삼아 이후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나가요 보다 더 인기를 얻었고 실제로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성격은 여리고 착하지만 프로 레슬링 세계에서 만큼은 악당으로 통했다고 알려진다. 지금은 방송 활동을 더 많이 하시고 계시는 분이긴 한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고 인정이 많아서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전해지는 거 보면 프로 레슬링이라는 건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쇼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특히 당시 여성 프로 레슬링은 자극적인 경기 방식으로 인해 가끔 선수가 죽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괴상한 무기를 많이 사용하는 덤프 마츠모토는 위험한 공격을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하니 어찌 보면 정도를 아는 광대가 덤프 마츠모토였다고 할 수 있다. 피를 흘리긴 하지만 당연히 치명상은 아니었고 관객들은 피를 봐야 흥분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타협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자극적인 내용 없이 순수하게 프로 레슬링 경기의 정수를 보여준 장면도 굉장히 뭉클했다. 아마도 덤프 마츠모토를 비롯 많은 프로 레슬링 선수들이 돈 때문에 그리고 회사의 압박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은 방향으로 경기를 진행해야 했고 승부 조작도 받아 들여야 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순수하게 프로 레슬링 경기를 즐기는 선수들을 보여줘서 더 의미 있었다.
물론 계속 이렇게 경기하면 관객들은 다 나가 떨어지겠지만 선수들이 진심이 보이는 장면이서 나도 괜히 뭉클해진 상태로 눈에 눈물이 살짝 맺히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긴 하지만 여기에 돈이 얽히다 보면 모든 일이 거의 대부분 지저분해지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중심을 찾는 게 참 어렵고 그걸 잘 찾는 사람들이 결국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하는 게 공식이긴 한데 가끔은 아주 순수한 상태가 그립기도 하다. 그러한 정서를 드라마가 아주 잘 담아내었다.
일본 넷플릭스는 이런 실화 드라마를 정말 잘 만든다.
리키시도 그러했는데 극악여왕도 무척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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